대학병원의 수도권 내 분원 설립에 먹구름이 꼈다. 정부가 수도권 병상 증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다.
보건복지부는 과잉 공급된 병상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제3기 병상수급 기본시책(2023~2027)’을 8일 발표했다. 정부는 의료법에 따라 병상의 합리적 공급과 배치를 위해 5년마다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수립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병상 수는 과잉 공급된 상태다. 한국의 2021년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3개)의 약 2.9배에 달한다. 이 중 일반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7.3개로, OECD 평균(3.5개)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대로 가면 오는 2027년엔 약 10만5000병상(일반·요양 병상 포함)이 과잉 공급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대학병원에서 추진 중인 분원 11개가 들어서면 2028년 이후 수도권에 최소 6600개 병상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대병원(경기 시흥) 800개 △서울아산병원(인천 청라) 800개 △세브란스병원(인천 송도) 800개 △가천대길병원(서울 송파) 1000개 △인하대병원(경기 김포) 700개 △경희의료원(경기 하남) 500개 △아주대의료원(경기 평택·파주) 각 500개 △고려대의료원(경기 과천·남양주) 각 500개 △한양대의료원(경기 안산, 병상 수 미정) 등이 병상 증설 계획을 밝혔다.
병상 대부분이 서울·경기 지역에 몰려 있어,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지방의 의료인력 유출과 필수의료 기반이 약화될 수 있어 국가 차원의 병상 자원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복지부는 이번 기본시책을 통해 지역별로 병상 수를 관리할 방침이다. 2027년 병상수급 분석 결과를 반영해 지역별 병상 관리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공급 제한 △공급 조정 △공급 가능 지역으로 구분해, 공급 제한 지역은 점진적으로 병상 수를 축소하도록 유도하고 향후 병상 공급을 제한할 계획이다.
시·도 병상수급 및 관리계획과 기본시책의 적합성 여부, 조정·자문 등 심사는 병상관리위원회가 맡는다. 이번에 신설할 예정인 병상관리위원회는 의료계·이용자 단체·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또 병상수급 현황을 상시 점검해 병상 허가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기적 통계를 산출해 활용할 계획이다.
의료기관을 새로 개설할 때도 기준이 까다로워진다. 현재는 건축 허가, 착공 신고, 완공 후 최종 사용승인을 받은 뒤 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받으면 된다. 여기에 사전 심의 절차를 도입해 부지 매입 전부터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대해선 병상 신·증설 시 각 시·도별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사전 심의, 승인을 받도록 의료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현재 일부 지역에서 시·군·구에 이양돼 있는 의료기관 개설 허가권을 시·도지사로 재정비해 의료기관 개설 허가 절차를 강화한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분원 등에 대해선 의료기관 개설 시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의료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가동 병상을 확대할 때도 동일하게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다만 필수의료 부족 사태를 감안해 필수의료 기능이나 감염병 대응, 권역 책임의료기관 중심 네트워크 구축 등은 과잉 공급지역이라도 병상 증설을 허용할 방침이다.
기존 병상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선 적정 의료인력 확보에 힘쓸 예정이다. 병원이 간호인력을 많이 배치할수록 재정지원을 많이 받도록 건강보험상의 간호인력 지원수가를 개편한다. 간호등급제 하한선을 강화해 법상 인력기준을 준수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제재를 강화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무분별한 병상 증가 방지를 위해 수도권에 분원 건립 예정인 대학병원의 병상 규모도 손볼 방침이다.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7일 사전설명회를 통해 “이미 수도권 분원이 진행되고 있는 병원이라고 하더라도, 적합성 여부 등에 대한 조치사항에 해당되는 경우 엄격하게 판단해 (병상 증설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역시 수도권에 과다하게 몰린 병상 수를 억제하지 않는다면 시책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수도권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6600병상 계획부터 백지화해야 시책이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그대로 두면 지역의 의료 인력을 빨아들여 수도권 쏠림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