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의 닭을 좋아하세요? 

복날의 닭을 좋아하세요? 

기사승인 2023-08-10 06:00:59
중복 하루 전인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한 삼계탕집에 복날맞이 보양식을 먹으러 온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최근 복날에 여전히 삼계탕, 치킨, 장어 등 보양식을 챙겨 먹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갈리고 있다.

초복, 중복, 말복 등 삼복(三伏)을 의미하는 복날은 1년 중 가장 더운 날로, 많은 사람들이 기력 보충을 위해 보양식을 챙겨 먹는다. 배민외식업광장이 지난해 6월10~20일 580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보양식을 먹는다’는 응답이 82.8%로 ‘먹지 않는다’(15.2%)의 5배에 달했다. 특히 보양식으로 닭요리를 먹는 이들이 많다. 보양식으로 선호하는 음식은 삼계탕 61.9%, 치킨 21.2%, 장어구이 4%로, 10명 중 8명이 복날에 닭고기를 먹는다고 답했다. 

서울 종로구 한 삼계탕집에서 직원들이 삼계탕을 나르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복날엔 삼계탕? “큰 이유 없어요”

말복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종로구 한 삼계탕 전문점 앞엔 손님들로 줄이 늘어섰다. 젊은 청년들부터 노년층, 외국인들까지 다양했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보양식을 먹으러 오거나, 한국 문화를 체험하려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복날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양식은 일종의 ‘관행’이었다. 이날 만난 이모(20대‧여‧직장인)씨는 “복날에 삼계탕을 즐겨 먹는다”라면서 “큰 이유는 없다, (복날은) 왠지 삼계탕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날”이라고 설명했다. 정모(28‧남‧직장인)씨도 “땀이 많은 체질이라 더운 날씨일수록 보양식을 챙겨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복날엔 뜨끈한 음식을 먹고 잘 우려낸 국물까지 든든하게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보양식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A씨(20대‧여)는 “취업하기 전까지는 복날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취업한 뒤 복날이 되면 회사 사람들과 함께 삼계탕을 먹는다”라고 밝혔다. 이어 “(여름에) 일이 바쁘고 기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보양식을 챙겨 먹는다”라고 덧붙였다.

동물권행동 카라가 공장식 축산폐해를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홈페이지 캡처.

“보양식, 꼭 먹어야 하나요?”


모든 사람 복날에 닭을 먹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보양식을 먹는 복날의 의미가 옅어지는 분위기다.

일부 청년들은 복날이라고 꼭 보양식을 먹을 이유는 없다고 했다. 박모(27‧여‧직장인)씨는 “굳이 복날 보양식을 먹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라며 “일부러 보양식을 챙겨 먹진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예전엔 더위를 피하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보양식을 먹었다”라며 “하지만 요즘엔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빙수를 먹으면 된다. 보양식을 먹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인에게 복날 보양식이 영양과잉으로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조현정 동물행동권 카라 활동가는 “한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보양식을 챙겨 먹던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는 오히려 영양과잉으로 불균형이 발생해 질병으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조 활동가는 “평소에도 영양 섭취가 많기 때문에 복날이라 닭을 먹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자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보양식을 대체할 식품도 많다. 조 활동가는 “최근에는 대체육을 활용한 식품을 추천한다”라며 “보양식 대신 여름에만 만날 수 있는 수박, 콩국수, 막국수, 묵사발을 먹으며 더위를 물리치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채식 보양식 식탁. 동물권행동 카라 

“복날엔 닭 대신 채식이죠”

최근 보양식 대신 채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SNS에 ‘복날 채식’을 검색하면, 채식 보양식에 관한 글이 쏟아진다. 닭 같은 고기류 대신 콩국수, 버섯, 나물 등을 먹는 복날 채식 인증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 누리꾼은 “복날 뭐 드실 건가요? 현대인은 사실 영양과잉이라 복날이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먹은 치킨 대신 채식으로 영양을 채워보는 건 어떠냐”라고 제안했다. 해당 글을 6686명이 인용하며 공감의 뜻을 드러냈다.

동물의 고통을 이해하고 채식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비건 유튜브 초식마녀 채널을 운영 중인 박지혜씨는 “비건을 시작한 2019년 2월부터 복날에 닭을 먹지 않고 있다”라며 “이미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 비위생적인 사육환경에서 자란 건강하지 않은 닭을 기름에 튀기거나 물에 끓여 먹는 것은 보양식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입이 즐겁기 위해 동물들이 겪는 고통을 합리화하거나 외면할 수 없어 비건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도 복날에 보양식 대신 채식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불교환경연대는 지난달 11일부터 말복인 10일까지 ‘복날 채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에서도 복날 채식 운동을 진행 중이다. 카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고기로 포장되기 위해 도살된 닭 10억2457만마리 중 약 2억 마리가 복날이 포함된 7~8월에 집중 도살된다고 전했다. 카라는 지난 8일 SNS를 통해 “미니 팜 생츄어리의 농장동물도, 공장식 축산에서 키워지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동물도 모두 같은 생명”이라고 말했다.

“‘원헬스’란 개념이 있어요. 사람과 동물, 환경의 건강이 모두 연결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동물을 소비하는 만큼 환경에도 영향이 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도 과도한 육식은 좋지 않습니다.” (조현정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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