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도 반납”… 참다못해 300쪽 보고서 쓴 현장 교사들

“방학도 반납”… 참다못해 300쪽 보고서 쓴 현장 교사들

현장 교사 정책TF, 교육부에 ‘최종 정책연구 보고서’ 제출

기사승인 2023-08-21 17:34:09
현장교사 정책 TF 소속 교사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교사가 ‘기관이 책임지고 기관이 대응하는 민원시스템 구축’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현장 교사들이 직접 연구한 교권 회복 및 보호 해결책을 교육당국에 제안했다.

어두운 옷과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현장교사 정책TF 소속 교사들은 서울 서이초등학교 개학일인 21일 오후 2시30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숨진 교사를 추모했다.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뜻을 모은 현장교사 정책TF는 현장 교사 목소리를 담아 공교육 정상화 방안 보고서를 집필하기 위해 방학까지 반납했다.

300여장의 두툼한 보고서를 손에 든 아동학대 TF 부팀장 유은혜 교사는 “(80여명의 교사들이) 17일 동안 쉬지 않고 보고서를 썼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첫 집회부터 5주 동안 매주 주말 집회가 끝난 이후에도, 이날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보고서 수정은 계속됐다.

TF총괄팀장을 맡은 최서연 교사는 “현장 교사가 자발적으로 모여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은 한국 교육 역사상 처음”이라며 “1·2차 설문조사에 3만8000명의 교원이 참여했고, 96.4%가 정책 제안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교사 마음을 이해해주는 설문은 처음 본다는 의견에 울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교사뿐만 아니라 유치원, 중·고등, 특수교사 등이 조사에 참여했다는 점에도 의미를 뒀다. 이들은 연구보고서를 이날 오후 교육부 간담회에서 전달한다.

현장교사 정책 TF 소속 교사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현장교사의 정책제안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연구보고서에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네 가지 주제가 담겼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 보호 △학교폭력법 개정 △기관 책임 민원시스템 구축 △법적 효력 있는 문제 행동 지침 마련 등이다.

현장교사 정책 TF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국 일선 교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인디스쿨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였다. 이전부터 존재한 특정 교원단체나 노조와 달리, 이번 사건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80여명의 교사들 대부분은 서이초 사건 이전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유은혜 아동학대 TF 부팀장은 일선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배경에 대해 “(서이초 교사가 겪은 일은 교육현장에서) 흔하게 벌어지던 일이었지만, 왜 현장 교사들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는지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최 교사는 “처음 서이초 사건을 접했을 때 죄책감에 휩싸였다”며 “교육 현장에 구조적인 문제가 많았지만 침묵했다. ‘내가 침묵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이초 교사를 외롭게 떠나게 하지 말자고 (인디스쿨에) 글을 올렸다. 정말 많은 교사가 추모식에 왔고, 그곳에서 만난 교사들과 모르는 사이임에도 서로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현장교사 정책 TF 소속 교사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직접 발간한 300여쪽 분량의 최종 정책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사진=임지혜 기자 

이날 현장 교사들은 지난 17일 교육부가 발표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에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민원시스템개선TF 남인영 교사는 회견문을 통해 “고시는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교육부 고시에는 ‘학생 또는 보호자는 교원의 생활지도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경우, 학교장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학교의 장은 14일 이내에 답변’하도록 돼 있다. 제대로 된 시스템과 절차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학교장의 업무는 결국 교사의 몫으로 넘어갈 뿐”이라고 주장했다. 

현장 교사들은 “고시가 시행돼도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교원이 교육적 판단을 바탕으로 생활지도를 해도 무고성 아동학대 수사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특정 개인, 단체가 아닌 현장 교사 그 자체”라며 “교육부는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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