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날, 상점들은 문 열고 에어컨 ‘풀가동’ [가봤더니]

에너지의 날, 상점들은 문 열고 에어컨 ‘풀가동’ [가봤더니]

상점들 문 열고 에어컨 가동…“손님 끊겨”
산업부 “코로나 이후 따로 권고 내리지 않아”
전문가 “정부 강력한 규제 필요”

기사승인 2023-08-23 06:00:18
서울 명동 거리에 있는 화장품 가게들. 전부 문을 열고 영업 중이다.

“문 닫고 장사를 어떻게 해요. 전기요금 폭탄 맞더라도 열어야지. 근처에 문 닫고 장사하는 가게 한 군데도 없어요.”

명동에서 7년째 화장품 가게를 운영 중인 최모(44·여)씨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최씨는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둔 상태로 에어컨을 18도로 가동하고 있었다. 열 평 남짓한 가게를 운영하며 전기요금만 매달 100만원이 넘게 나오고 있지만, 손님이 끊길까 두려워 문을 열고 영업한다. 

매년 8월 22일은 정부가 지정한 에너지의 날이다. 지난 2003년 한국 전력수요가 역대 최고 수요(4598만kw)를 기록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부터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오후 두시부터 세시까지는 실내온도를 2도 높이고, 오후 9시엔 5분간 소등하는 캠페인 등을 진행한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에어컨 실내온도 올리기 등 ‘에너지 절약’을 지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명동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 중인 A씨는 “2년간 코로나로 타격을 크게 입은 이후 이제 겨우 손님을 유치하고 있다”며 “문을 열어 두지 않으면 손님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전기요금 조금 아끼자고 문을 닫아 두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다른 가게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부터 악세사리 가게를 운영 중인 김씨도 “구경하는 손님 한명이라도 더 들어오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다른 가게들도 전부 문을 열고 에어컨을 트니 개문냉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전했다. 

관광객들이 명동 골목에서 상점을 구경하며 지나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문이 열린 상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쿠키뉴스가 찾은 명동은 낮 기온이 31도까지 올랐다. 오후에 소나기가 짧게 내렸지만, 더위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햇볕이 뜨거울수록 가게에서 새어나온 에어컨 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취재진이 명동 거리 614m를 돌아다닌 결과 68개 업장이 문을 열고 운영 중이었다. 식당이나 카페는 문을 닫고 영업했지만, 손님들이 부담없이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옷가게나 악세사리, 화장품, 신발 가게 등은 전부 에어컨을 ‘풀 가동’ 한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점을 이용하는 손님들도 개문냉방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친구들과 명동에 자주 놀러온다는 정씨(22·여)는 “(문을 열고 장사를 하면)전기가 많이 쓰인다는 것은 알지만,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니 가게 앞을 지날 때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것은 맞다”며 “가게 문이 열려있으면 옷이나 화장품 구경할 때 안으로 들어가는 게 훨씬 덜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프랜차이즈 드러그스토어도 문을 연 채로 영업 중이다.
지나가던 시민이 옷가게에 걸린 옷을 살펴보고 있다.

개문냉방은 에너지를 과소비의 주범이라고 꾸준히 지적받아왔다. 전문가들은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한 채 문을 열면 전력 소비가 3배 넘게 늘어난다고 말한다. 특정 구역에서 전력이 과다하게 사용되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만,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어 강한 규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효율과 관계자는 “개문냉방 등을 단속하려면 별도 고시를 내려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경제 회복 등을 이유로 단속 고시를 하고 있지는 않다”며 “화장품 업계 등에 최대한 (개문냉방을 하지 말아달라고)권고하고 있지만, 개인사업자의 자유 영역이기도 해서 강력하게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력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난 7일 전력거래소는 전력 총수요가 100GW를 넘어선 것으로 추계하기도 했다. 한 시간 평균 전력 수요가 100GW를 넘어선 것은 전력수급 역사상 처음이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은 “에너지 과다 사용은 사회적 낭비가 되고, 그 비용은 다시 국민들이 안게 되는 구조”라며 “캠페인 등도 좋지만, 개문냉방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심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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