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경찰 제거 위해 저격수 보낸 홍범도와 김좌진

친일 경찰 제거 위해 저격수 보낸 홍범도와 김좌진

[MZ세대를 위한 '현대문으로 읽는 근대뉴스' 해설]
독립군 동지 지키지 못한 서일은 호흡 멈춰 자살

기사승인 2023-08-29 17:21:16
1921년 3월 19일

항일무장투쟁가 홍범도 김좌진이 친일파 암살과 군자금 모금을 위해 부하 5명을 서울과 평양 등 5개 도시로 잠입시켰다.

홍범도와 김좌진은 무장한 이들 5명을 서울 평양 의주 원산 청진 등으로 보내 조선인 친일 형사와 친일파 이름을 조사하도록 명령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거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이들은 변장한 채 조선에 잠입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한편 러시아 땅 추풍령을 근거로 활동 중인 대한총합부 서일 총재는 러시아 진보그룹과 연대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인쇄기 2대를 확보, 선전물을 배포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블라디보스톡 발·동아일보)
봉오동 전투 당시의 홍범도

□ 해설

1920년 봉오동 전투를 통해 일본군 120명을 사살한 전과를 올린 홍범도는 이어 김좌진의 북로정서군과 함께 연이어 일본제국주의 세력을 격파했다.

위 보도는 이듬해 블라디보스톡 주재기자가 독립군들의 활동 상황을 보도한 것이다. 홍범도 김좌진 서일 등이 친일 한국인 경찰과 친일파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저격수들을 잠입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당시 서울과 평양, 그리고 독립군의 거점 확보가 용이했던 이북 주요 지역인 의주 원산 청진 등에 1급 저격수를 보낸 듯 하다. 친일파를 제거하면서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서였다.

이 불세출의 영웅들은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홍범도(1868~1943)는 1937년 스탈린이 고려인과 일본인이 닮았다는 이유로 중앙아시아로 옮겨져 극장관리인으로 살다 타계했다.

김좌진(1889~1930)은 고려공산청년회 회원 박상실에게 피살됐다. 또 서일(1881~1921)은 이 해 자유시 참변으로 많은 동지들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두 달 후 스스로 호흡을 멈추는 방법으로 밀산에서 자살했다. 자유시 참변은 ‘붉은 군대’의 통수권을 거부한 한인 망명 독립군이 포위되어 진압된 사건을 말한다.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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