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실종됐다’ 대한민국 정치권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이다. 대통령이 취임한 지 400여 일이 넘도록 제1야당 대표와 정식적으로 마주하지 않고, 여야가 모든 사안마다 일일이 부딪치면서 비난 일색이다. 특정 기간이나 사안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각을 세우는 까닭에 국민이 피로감을 호소할 지경이다.
다수의 중진 의원들은 불과 4년 전 20대 국회까지만 하더라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른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다른 의견을 말하더라도 서로 인정하고 존중했다는 것이다.
4선 중진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은 1일 쿠키뉴스에 “여야가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정치가 이러면 안 된다는 자성의 자세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며 “인간적인 모임을 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지금은 그냥 개인주의”라고 말했다.
홍 의원의 말대로 21대 이전의 국회만 하더라도 비공식적인 교류가 잦았다. 바둑·서예·태권도 등 취미 활동을 중심으로 여야 의원들이 격이 없이 만나고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자신들과 다른 생각이 있고 서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의 대표 동호회 모임은 바둑을 취미로 하는 ‘기우회’였다. 지난 20대 국회 때 프로 바둑 기사 출신인 조훈현 전 의원이 원내 입성해 더욱 주목받은 측면도 있지만, 평소 바둑에 관심이 많던 의원들이 교류하고 소통했다.
20대 국회에서 ‘기우회’ 간사를 맡았던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쿠키뉴스에 “국민의힘에도 바둑을 잘 두는 의원들이 몇 분 있다고 들었는데 21대에는 바둑을 즐기는 인원이 확 줄어 모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그런 자리들이 알게 모르게 여야가 서로를 이해하는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없어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통 의원들은 국내에서는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외국에 나가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과 여유가 생겨 친해질 기회가 있는데 코로나로 출국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봐도 서먹한 의원들이 있다”고 부연했다.
이 밖에도 서예를 즐기는 의원 모임인 ‘서도회’도 있다. 의정활동 틈틈이 붓글씨를 쓰면서 마음 수양하는 모임으로 현역 중에는 주호영·조경태·김승남 의원 등이 속해 있다. 의원회관 5층에 있는 ‘서도실’을 오가면 자연스럽게 소통하곤 했다.
극단의 정치에 변화를 주려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홍문표 의원은 곧 태권도, 농업을 주제로 한 의원 모임을 각각 만들 계획이다. 홍 의원은 “지금 국회의원 태권도연맹 총재를 맡고 있는데 9월 내 태권도 동호인 의원들과 함께 모임을 마련할 생각이다. 또 내가 속한 농해수위를 중심으로 당을 초월한 여야 의원 모임도 계획 중”이라며 “자기주장만 할 게 아니라 서로 만나 지혜를 찾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통된 취미는 아니지만, 같은 공간에서 자주 만나는 의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가칭 ‘목욕당’도 있다. 의원들만 출입이 가능한 의원회관 1층 목욕탕을 즐겨 찾는 의원들의 친목 모임으로 정국이 꽉 막혔을 때 갈등 해소에 앞장서곤 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목욕당’ 소속 여당 중진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야당이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고 나올 때 야당을 설득해 타협점을 도출하기도 했고, 반대로 대통령실을 설득해 국정운영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실의 완고하고 강경한 태도에 행여 나섰다가 망신살만 뻗칠까 봐 아무도 나설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전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