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선 아동학대… 부모 동의 없으면 진료 못 받는 정신과

외국에선 아동학대… 부모 동의 없으면 진료 못 받는 정신과

2023 국회자살예방포럼 제6차 국제세미나 개최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 극단선택 시도도 증가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하는데, 보호체계는 부족… 대책수립 필요”

기사승인 2023-09-06 07:00:02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3 국회자살예방포럼 제6차 국제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청소년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도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등 위기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자살예방포럼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3 국회자살예방포럼 제6차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살사망률은 10년 새 감소 추세를 보였음에도,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한국의 2020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률은 24.1명으로, OECD 평균(11명)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모든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재단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2022년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사업’ 결과에 따르면 응급실을 내원한 10대 자살시도자는 4368명이었다. 전년 대비 600여명인 1.8%p 증가했다.

청소년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2021년 코로나19 청소년 정신건강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대상자 570명 중 정상 수준은 64.7%(369명)인데 반해 우울증 위험군인 △가벼운 수준은 21%(120명) △중간 수준 12.46%(71명) △심한 수준이 1.75%(10명)으로 나타났다.

10대 자살률 역시 2017년 4.7%, 2018년 5.8%, 2019년 5.9%, 2020년 6.5%, 2021년 7.1%로 증가 추세다. 2021년 10대~30대에서 고의적 자해(자살)는 사망원인 순위 1위다. 연령별 전체 사망원인 중 고의적 자해(자살)이 차지하는 백분율은 10대 43.7%, 20대 56.8%, 30대 40.6%다.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환경 탓이다. ‘어려움에 빠졌을 때 기댈 가족·친구·동료가 있는지’를 물은 결과 한국인의 72.4%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는 OECD 회원국(평균 88%)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국회 자살예방포럼 자문위원장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위기에 빠진 사람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부족하고,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자살예방포럼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3 국회자살예방포럼 제6차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김은빈 기자

해외 국가도 마찬가지로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다만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일본은 아동가족청 설치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별로 다학제 정신건강위기개입팀을 만들고, 민간단체 지원을 통한 자살예방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코로나19 이후 정신적 문제로 응급실을 찾은 아동과 청소년 비율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2022년도 예산안 중 3억 달러(한화 약 4002억원)를 투입해 일선 학교에 배치할 정신건강 전문가를 배치했다. 

또한 정신건강 및 약물 남용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교내에 더 많은 심리학자, 상담사 등 정신건강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도록 10년간 270억 달러(약 36조원) 이상의 재량 자금과 1000억 달러(약 133조4000억원)의 의무 자금을 추가로 제안했다.

한국도 자살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 제주도 교육청에 정신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특별상담실을 운영하자, 자살률이 0%로 급감하기도 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이 치료를 받고 싶어도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정신과 진료를 받지 못하는 등 미비한 제도가 남아있다. 백 교수는 “현행법상 성인이 되기 전 부모의 동의 없이는 자살 고위험군이라도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살 위험이 매우 높은 청소년의 치료를 부모가 반대하는 경우 나라에 따라서는 아동학대 중 방임에 해당한다”며 “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마틴 반덴딕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 정신보건·약물남용 담당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청소년 사망 원인의 4분의 1은 자살”이라며 “교사나 보호자들이 청소년과 자살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건 자살 위험을 높이지 않으며, 오히려 청소년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피력했다.

국회는 청소년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자살예방포럼 공동대표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대인관계 문제 등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반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관리 체계는 부족하다”며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자살예방포럼 공동대표인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도 “정부에서는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통해 정신건강 검진 확대와 생애주기별·생활터별 맞춤형 자살 예방 정책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자살에 대한 공동의 관심을 높이고 정책적 지원을 지속할 때 안타까운 극단적 선택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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