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보육 구분해야”… ‘늘봄학교’ 반대하는 교사들

“교육‧보육 구분해야”… ‘늘봄학교’ 반대하는 교사들

기사승인 2023-09-11 06:00:11
지난 2월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교육 공간인 학교가 보육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부가 2024년 늘봄학교 도입 계획을 밝히며 학교 내 돌봄이 확대되자, 부모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현장 교사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 울타리 내에서 돌봄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8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23년도 범정부 온종일 돌봄 수요조사’ 자료에 따르면 초등 1~5학년과 2023학년도 예비 취학아동 보호자 8만9004명 중 49.5%가 돌봄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희망 돌봄기관(중복응답)으로는 초등돌봄교실이 81.4%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학교돌봄터가 36.7%로 뒤를 이었고 다함께돌봄센터·지역아동센터는 10%대였다.

현장 교사들은 ‘교육’ 기관인 학교와 ‘보육’을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기 초등교사 A씨는 “돌봄 교실 등 보육을 학교에 떠넘기고 유보통합까지 이야기하며 학교에 보육을 맡기는 상황”이라며 “보육과 교육은 구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지난달 10일부터 9일간 현장 교원 3만6750명으로부터 늘봄학교 반대 서명을 받았다. 

교사들은 교육과 보육이 뒤섞이면 새로운 종류의 교권 침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일부 학교에선 이미 다양한 교권 침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익명의 교사들이 만든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사례 2077건 모음집’에는 ‘소극적인 우리 아이 친구 만들어 주세요’, ‘왜 우리 아이 생일파티 안 해주시나요’, ‘아이 양치질 좀 도와주세요’ 등 학교에서 가정의 역할을 바라는 민원이 다수다. 과거 교사는 ‘사범(師範)’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최근 교사에게 부모 역할까지 해주길 기대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돌봄으로 교사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받는 것도 문제다. 초등교사 B씨는 “수업이 끝난 뒤 교사는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돌봄과 방과후교실 등으로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라며 “교재 연구 등에 방해가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라고 지적했다. 돌봄교실 관련 행정업무도 교사들이 담당하게 된다. 지난해 교육부의 초등 방과후학교 주업무담당자 현황에 따르면, 86.4%의 교사들이 업무를 담당했다.

방과후학교 돌봄 경험자인 박영란 인평초등학교 교사는 “수업 중에 방과후학교 업무 연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즉각 해결을 요구는 받는 경우가 많다”라며 “방과후학교 업무로 학급 학생에게 소홀해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초등교사 C씨는 “방과 후 돌봄 업무 자체에서 교사들은 배제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의 학습권도 침해될 수 있다. 학교 강당이나 특별실 등에 돌봄교실이 마련되면 오후에 학교 수업을 진행할 공간이 부족해진다. 결국 학생들의 교육과정을 변칙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초등교사 D씨는 “과학실을 돌봄 교실로 사용하면 오후에 과학실에서 수업을 할 수 없다”라며 “일부 학생을 위해 더 많은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늘봄학교는 아동이 원하는 돌봄과 거리도 멀다. 김송이 전 서울여성재단 연구위원은 “양육자들과 달리, 아동들은 학교 공간을 선호하지 않는다”라며 “아동 관점에서 초등돌봄교실 운영을 개선하지 않고 운영시간만 확대하면 오히려 아동권이 침해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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