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 뭐길래… 의사·환자들 막아선 이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 뭐길래… 의사·환자들 막아선 이유

실손보험 종이서류 안 떼도 될까… 14년만에 입법 첫발
환자·시민단체 “보험료 지급 거절 등 보험사 갑질에 시달릴 것”
의료계 반대도 넘어야 할 산… “보이콧·위헌소송 불사”

기사승인 2023-09-13 06:00:22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12일 국회 앞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보험업법 개정안 처리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은빈 기자

실손의료보험 청구 과정을 간소화하는 법안이 14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종이 서류를 직접 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전산화해 소액 보험료도 청구가 쉬워지도록 개선돼 가입자 편의가 크게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의사단체와 환자단체의 반발이 크다. 환자의 개인정보 보안을 담보할 수 없고, 환자의 의료정보가 넘어가면 결국 보험사의 지급 거절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한다.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면, 국회 본회의 의결만 남겨놓게 된다. 

지난 6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실손보험 청구를 전자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 청구를 위해 의료기관에 진료비 내역 등 필요한 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사에 전송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요청을 받은 의료기관은 전송 대행기관(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정보를 전송한다.

지금은 실손보험료를 청구하려면 병원이나 약국에서 진료비·약제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 산정내역서, 병명 확인서 등을 종이 서류로 발급받아 팩스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한 탓에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실제로 지난 2021년 녹색소비자연대가 실손보험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47.2%가 실손보험을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1~2022년 청구되지 않은 실손보험금 추정치는 연평균 2535억원에 달한다.

법안이 개정될 경우 번거롭게 서류를 받기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기대는 크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12일 성명을 통해 “이번 보험업법 개정은 국민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민생법안이자 국민 불편을 야기하는 불합리한 제도들을 개선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의 이정근 상근부회장과 김종민 보험이사가 12일 국회 앞에서 보험업법 처리 반대 1인 시위를 펼쳤다.   사진=김은빈 기자

다만 환자단체와 의료계는 걱정이 앞선다.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편익이 증대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다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감한 개인의 의료정보가 전자적인 형태로 보험사에 제출된다면 손쉽게 수집·축적될 수 있고, 해당 정보가 보험료 가입 거절이나 보험료 인상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1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사가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진료정보를 최대한 수집해 환자를 선별하고, 고액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이라며 “환자들 입장에선 단기적으로는 소액청구가 쉬워 약간의 이득을 볼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정보를 축적한 보험사들의 갑질에 더욱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자단체도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의성을 높여주기 위해 보험업법 개정안을 추진한다는 보험업계의 주장 뒤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봤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 루게릭 연맹회, 한국폐섬유화 환우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 보험사는 실손보험의 누수를 보험 계약자의 의료 쇼핑과 병원들의 과잉 치료로 발생한 것처럼 호도하며 매년 갱신된 보험료 인상으로 가입자인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는 실정”이라며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보험료 인상폭이 더욱 커지는 등 부작용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의료계 반대는 넘어야 할 산이다.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 자료를 넘겨주지 않을 가능성도 열려 있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는 지난 6월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약계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 통과 시 전송 거부 운동 등 보이콧과 위헌소송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기관이 환자의 진료자료 전송을 거부한다면, 보험업법 개정안은 사실상 ‘반쪽짜리’가 된다.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실손보험 가입자 진료 자료를 넘겨주지 않으면 실손보험 청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이 진료 자료를 전송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신진창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은 지난 4월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1소위에서 “제도 첫발을 내딛는 데 있어 (의료기관의) 자발적 협조에 기초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며 “그래서 소위 심사 자료에는 처벌 조항을 안 넣는 것으로 돼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의협은 법안 통과 전 협의체를 구성해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12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김종민 의협 보험이사는 “이 법안의 국회 정무위 통과 과정에서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특히 전송 과정에서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향후 중계기관과 보험회사 간 정보 유출 책임 분쟁 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스럽다”면서 “법안 통과 이전에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