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에 백설공주가…‘꿀잠’ 자러 청년들 모였다 [가봤더니]

서울숲에 백설공주가…‘꿀잠’ 자러 청년들 모였다 [가봤더니]

8번째 맞은 서울숲 꿀잠대회
우승자에 김진성‧박민지씨

기사승인 2023-09-16 06:00:39
15일 오후 1시30분 서울 성수동 서울숲에서 유한킴벌리가 주최한 ‘2023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숲속 꿀잠대회’가 열렸다. 이날 백설공주 의상을 입고 참가한 김민희씨가 독사과를 먹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지저귀는 새소리와 시민들의 발걸음 소리. 평화로운 공원에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단체로 울려 퍼졌다. 15일 오후 1시30분 서울 성수동 서울숲에서 100여명의 청년들이 단잠에 빠져다. 안대와 담요를 덮은 청년들에게 추적추적 비가 오는 흐린 날씨는 오히려 숙면에 도움이 되는 듯 했다.

잠을 잘 자야 우승하는 대회. 이날 유한킴벌리가 주최한 ‘2023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숲속 꿀잠대회’에선 잠을 자는 것 외의 행동은 모두 실격이다. 핸드폰을 하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안 된다. 30분마다 참가자들 심박수를 확인, 가장 안정적인 심박수를 기록한 사람에게 우승 트로피가 전달된다. 올해 8번째인 대회는 지난해 참가자 30여명에서 올해 100여명으로 늘렸다. 그래도 경쟁률 129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이날의 드레스코드는 잠옷. 가장 특별한 잠옷을 입은 참가자는 베스트 드레서에 선정된다. 서울숲에 백설공주 의상을 입은 김민희(29)씨가 나타나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가 손수 준비한 사과엔 ‘독사과’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사과를 먹고 잠들기 위해 백설공주 의상을 선택했다”라며 “독사과를 먹고 잠들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아이돌 그룹 에이턴 멤버들은 과거로 시간 여행한 콘셉트를 떠올려 의상을 준비했다. 멤버 경민은 “어제까지 1979년에 있다가 2023년으로 시간 여행을 왔다. 시차 적응 중”이라고 소개했다.

‘2023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숲속 꿀잠대회’에서 평소 입는 잠옷과 애착 인형을 준비해 온 박세한(31)씨가 깊은 잠에 들었다. 사진=임형택 기자

참가자들은 의상 외에도 숙면에 들기 위한 자신만의 물품을 직접 챙겨왔다. 잠옷과 애착 인형인 올라프 인형을 준비해 온 박세한(31)씨는 “평소 집에서 잘 때 입는 옷과 인형을 준비했다”라며 “그냥 자고 가겠다”라고 대회에 참가하는 포부를 드러냈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온 박정인씨가 준비한 건 책과 술이었다. 박씨는 “깊게 잠들기 위해 영어책과 술을 들고 왔다”라며 “책을 보면 눈꺼풀이 감기고 술도 잠드는 데 도움을 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잠을 잘 자야 하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불면증을 호소했다. 박정인씨는 “잦은 야근과 무더위로 최근 잠을 못 잤다”라며 “피로를 풀기 위해 회사에 반차를 내고 참석했다”라고 말했다. 경기 이천시에서 온 강지훈씨도 야간 근무자다. 강씨는 “당직으로 돌아가면서 야간에 일을 한다”라며 “어제도 당직을 서고 잠을 자기 위해 왔다”라고 참가한 동기를 밝혔다.

‘꿀잠대회’ 참가자들에게 대회 시작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회 시작 10분 전부터 이미 20여명의 참가자가 잠이 들었다. 오후 1시30분 사회자가 대회 시작을 알리자, 참가자들은 하나둘 깊은 잠에 빠졌다. 각자 준비해 온 안대와 담요를 덮고 잠에 빠진 참가자들 사이로 심박수를 체크하는 진행 요원들의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공원을 지나가던 일부 시민들은 100여명의 참가자가 단체로 잠든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2023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숲속 꿀잠대회’에서 잠든 100여명의 참가자들. 사진=임형택 기자

대회 시작 40여분이 지나자 1명의 탈락자가 발생했다. 탈락자들은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오후 2시50분쯤 탈락한 최성익(25‧대학생)씨는 “평소 자던 이불과 베개가 없어서 깊은 잠에 빠지지 못했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탈락의 아쉬움이 남는다”라며 “내년엔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 참여하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날 대회는 오후 3시30분쯤 종료됐다. 이날 우승자는 심박수 편차 1을 기록한 김진성씨에게 돌아갔다. 준우승인 2등도 편차 2를 기록하는 등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이날 베스트 드레서에는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백설공주 의상의 김민희씨에게 돌아갔다. 김씨는 “우승해서 받은 상품으로 또 다른 옷을 살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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