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22조원 가량의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연금개혁안이 제시됐다. 그간 정부가 연금개혁을 차일피일 미뤄 재정 부담이 늘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연금연구회 제2차 세미나에 참석해 “국민연금 개혁이 늦어져 늘어난 부담의 책임을 고려했을 때 국내총생산(GDP)의 1.5% 정도는 정부가 부담하는 노력을 먼저 보여야 국민이 개혁에 동의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최대한 세금 인상 없이 기존 재정에서 GDP의 1% 정도인 22조원 가량을 부담하는 모습을 보일 때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소득재분배 재원은 정부 재원으로 해결하는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개혁이 5년 지연될 때마다 균형상태 부담이 GDP 0.5%씩 증가했다. 2007년 개혁 이후 16년간 개혁이 지체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22조원을 투입해야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주장이다. 현 정부가 재정 투입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 정부가 부담해야 할 재정은 GDP 4~5% 수준이라고 추계하기도 했다
당장 연금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기금운용수익률 1%p 이상 제고’ 역시, 연금개혁이 5년 늦춰진다면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교수는 “5년 후부터는 기금운용수익률 개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며 “국민연금 규모를 감안해 이번 개혁이 실패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최소한 국내 주식은 현금화를 해야 그나마 현재평가액을 현금으로 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22조원 재정을 투입한다면 현행 보험료율(9%)에서 3% 인상과 기금 운용수익률 1.5%p 상향 조정만 해도 재정안정화가 가능하다. 김 교수가 제시한 개혁안은 ‘GDP 1% 재정 투입, 보험료율 3%포인트(9%→12%) 상향, 기금 운용수익률 1.5%포인트 향상’이다.
김 교수는 “급격한 보험료율 인상은 사회적 약자인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개혁 과정을 버틸 수 없게 만든다”면서 “경제성장전망을 감안하면 연 0.5% 정도가 적당한 상한”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국고를 투입하는 것과 관련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정부는 줄곧 국민연금의 수익자부담 원칙(급여에 필요한 비용을 수익자에게 징수)을 들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날 세미나에서 김태일 고려대 교수는 소득대체율 인상보다는 가입기간 확충이 노후소득 보장 강화에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소득대체율은 지급율과 가입기간을 곱한 값으로, 현행 40%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시 1%를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 조정한다면, 지급률을 1.25로 높여 40년 가입 시 50%가 된다.
소득대체율이 인상될 경우 가입기간이 길수록 돌아오는 효과가 높다는 의미다. 안정된 직장에 오래 다닌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공산이 크다. 김 교수가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를 소득수준별(5분위)로 추계한 결과,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였을 때 저소득층(2분위)은 6만5000원 더 받는 반면, 고소득(5분위)는 24만5000원을 더 받아,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김 교수는 사회보험의 취지를 고려해봤을 땐 지급률을 높이는 것보다 가입기간 확충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출산·군 복무 크레딧 확충,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을 통해 가입기간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게 돌아가는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은 공적연금 가입 기간이 짧아 급여액이 낮고 사각지대가 많다”며 “가입기간을 35년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한 수단을 강구하고 실천해 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