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동맥고혈압은 이제 막 알려진 새로운 질환입니다.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려면 여러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지난달 23일 오전 11시, 가천대 길병원 2층 다학제 진료실에 심장내과와 심장소아과, 호흡기내과, 류마티스내과, 흉부외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영상의학과 교수 8명이 자리했다. 이들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외래 환자를 잠시 뒤로하고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치료 방향을 잡는 데 집중했다.
교수들을 마주한 53세 여성 김모씨는 어렸을 때부터 심장에 구멍이 닫히지 않는 선천성 심장질환 ‘동맥관개존증’을 앓아왔다. 이로 인해 심장압이 높아져 2019년 ‘폐동맥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심각한 호흡 장애와 심장 기능 이상으로 생사를 오갔다. 그러다 2020년 가천대길병원에서 두 차례 다학제 진료를 받으면서 새롭게 치료 방향을 잡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올해 들어 병원은 심장 구멍을 막는 동맥관폐쇄수술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다학제 진료를 진행했다. 이날 모인 전문가들은 김씨의 수술과 예후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전달했다.
안경진 심장소아과 교수와 최창휴 흉부외과 교수는 현재 환자의 심장압이 충분히 떨어진 상황이 아니라며 수술로 인해 자칫 심장 피로도가 가중돼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담당 주치의인 정욱진 심장내과 교수는 “환자의 심장압이 표준치에 도달할 때까지 주사제를 유지하고, 내년에 다시 논의를 거쳐 수술 진행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정리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그동안 불편감을 느꼈던 다른 증상들에 대한 상담도 가졌다. 폐동맥고혈압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손가락 통증에 대해 재활의학과로부터 스테로이드 주사를 처방 받았다. 또 정신의학과는 환자의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우울, 불면증을 완화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권했다.
김씨에 이어 다학제 진료실을 찾은 이모(남·69세)씨는 다른 병원에서 호흡기내과 진료를 받던 환자다. 그간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증상을 보여 스테로이드 흡입제만 복용해 왔다. 최근 숨이 차 걷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폐동맥고혈압을 의심해 다학제 진료를 받기 위해 길병원으로 전원했다.
영상의학과 분석 결과, 폐에 공기가 차는 폐기종과 폐고혈압 징후를 확인했다. 의료진은 환자의 산소 수치 저하, 폐기종 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심장압을 떨어트리는 치료를 병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더불어 불어난 체중과 운동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재활치료도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두 환자는 8명의 전문의와 함께 각 30분간 진료를 받았다. 다학제 진료가 아닌 일반 진료에선 8개 진료과를 아우르기 어렵다. 수개월에 걸쳐 미리 예약을 이어가야 하며, 진료과별 예약 시간이 어긋나면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횟수도 늘어난다. 시간적, 체력적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고착적인 ‘3분 진료’ 탓에 마음 편하게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다.
◇ 폐동맥고혈압 생존기간 2년…“조기 발견 위해 다학제 필요”
폐동맥고혈압은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수송로인 혈관이 막혀 발생한다. 치료하지 않으면 생존기간이 2~3년 정도로 짧다. 하지만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이 상당수다. 폐동맥고혈압으로 진단된 환자들 중에선 조기 발견 사례가 드문 편이다. 보다 세밀하고 종합적인 진료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윤영진 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회장은 “폐동맥고혈압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알려지지 않은 질환이었다”며 “치료 환경이 차츰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폐동맥고혈압을 모르는 의사들이 많고 환자들은 죽음과 싸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신, 재활, 영양 분야 등이 다학제 진료 과정에서 초반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이기도 한 정욱진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은 증상이 뚜렷하지 않고 생존율이 낮은 난치성 질환”이라며 “조기 진단이 쉽지 않기 때문에 다학제 진료가 주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다학제 진료·전문센터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의료계는 물론 정부의 인식 제고가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현재 전국적으로 폐동맥고혈압 다학제 진료팀을 구축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대학병원 중 전문센터 7~8곳을 선정해 체계적인 진료 환경을 갖춰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