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구인이다. 지구에서 태어났다….” 가수 김창완은 최근 이 문장을 입에 머금고 지냈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으로 세상이 시끄럽던 때였다. 일흔을 앞둔 로커는 인간이 나약하다는 생각에 한동안 무력했다고 한다. 그때 떠올린 문장이 바로 ‘나는 지구인이다’였다. 김창완은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경기 하남 팔당댐까지 30㎞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며 문장에 살을 덧대고 선율을 붙였다. 23일 서울 서교동 벨로주에서 만난 김창완이 들려준 신곡 ‘나는 지구인이다’ 탄생기다.
김창완은 “내가 뭘 더 내려놔야 노래가 나올까 생각하며 ‘나는 지구인이다’를 만들었다. 내가 가진 욕심이나 도그마(독단적인 신조)로부터 벗어나길 간절하길 바랐다”고 했다. 그 바람이 전해진 걸까. ‘나는 지구인이다’ 스케치를 받아든 김창완밴드의 키보디스트 이상훈은 전자 사운드가 강조된 신스팝으로 노래를 탈바꿈했다. 밴드 산울림으로 활동하며 한국 록 음악의 초석을 다지고, 솔로 음반으로는 소박하고 따뜻한 포크 음악을 들려주던 거장의 깜짝 변신이다.
김창완은 이 곡을 녹음할 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슬픔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일상을 뒤집어 생각하면 기적 같은 나날”이라며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런 마음이 화들짝 깨어난다. 후렴에선 굉장히 먹먹해지는데, 기쁨으로 인한 벅참 같다”고 돌아봤다. 김창완을 울린 ‘나는 지구인이다’는 동명 음반에 실려 24일 온라인 음원사이트에 먼저 공개된다.다음 달 중에 NFC를 활용한 카드 음반과 CD로도 세상에 나온다. 음반엔 ‘나는 지구인이다’ 말고도 김창완이 KBS2 ‘진짜가 나타났다’ 출연 당시 만든 노래 ‘이쁜 게 좋아요’와 베토벤 소나타를 기타로 연주한 ‘월광’ 등이 실린다.
올해 음악 인생 46돌을 맞은 김창완은 “젊은이들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유’를 외쳤으나 실은 난 고집스럽고 폐쇄적이다. 그에 반해 젊은 세대는 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며 시야도 넓다”면서 “내가 젊은이를 어른의 대척점으로 보지 않듯, 젊은이들도 그런 눈으로 어른을 봐주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8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올랐던 김창완은 젊은 관객과 접점을 넓히는 데 열심이다. 다음 달 13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밴드 크라잉넛과 ‘아니 벌써 밤이 깊었네’란 제목으로 공연을 연다. 김창완은 “올해 작은 물꼬를 터서 내년엔 더 많은 뮤지션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