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 총선 선거제 개편을 두고 치열한 셈법 중인 가운데 이재명 지지자 커뮤니티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이 요구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자는 의외의 반응이다. 우선 한 석이라도 더 얻어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24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 커뮤니티인 ‘재명이네 마을’에는 ‘병립형으로 가는 게 맞다’라는 내용의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정치개혁과 명분을 포기하더라도 일단 원내 1당이 되는 게 이재명 대표를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의 발로인 셈이다. 국민의힘이 꺼낸 병립형 회귀 주장이지만 수용하겠단 파격적인 태도다.
병립형은 47개의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역구 의석과 상관없이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나누는 것이고, 연동형은 지역구에서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을 채우지 못했다면 비례대표에서 그만큼의 의석을 채워주는 제도다.
연동형은 80석 이상씩 지역구 의석을 확보한 거대 정당보다는 소수 정당을 배려한 것인데 위성정당의 출연을 막기 어렵다는 난제가 있다.
이재명 지지자들의 병립형 수용 주장은 22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방송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방송에 출연한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연동형·병립형이 각각 적용됐을 때를 가정해 분석·비교했는데 ‘병립형’일 때 민주당이 의석 확보에 더욱 유리하다고 결론을 지었다.
최 전 부원장은 “(연동형의) 취지는 좋은데 상대방의 위성정당을 원천적으로 차단 못 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국민의힘 위성정당과 연합 정치를 하게 된다”며 “진보적인 소수 정당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거였는데 실제로는 국민의힘이 그 혜택의 대부분을 가져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성정당을 막지 못하면 연동형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게 지금 요지’인 것이냐고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면 정치개혁은 사실상 실패하는 셈이다. 과거로의 퇴행으로 해석되며 이는 이재명 대표가 계속 강조해온 선거개혁 주장과도 어긋난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이재명을 우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커 보인다. 민주당이 수십 년간 지켜온 명분과 도덕성의 정치를 포기하고 일단은 유리한 선거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립형 회귀는 명분과 실리 측면에서 모두 잘못된 것이란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다. ‘위성정당’ 방지 주장을 계속해 펼쳐온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명분을 포기한 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실리만을 챙기려 한다면 결국 크게 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23일 쿠키뉴스와 만나 “병립형을 택해 정치개혁을 후퇴시키면 안 된다고 숱하게 약속해왔고, 실제 이기기 위해서라도 명분을 지키는 게 도리”라며 “병립형으로 후퇴했을 때 민주당에 실망해 떨어져 나갈 표는 왜 생각하지 못하느냐”고 일갈했다.
이어 “우리는 위성정당을 당연히 만들지 않아야 하고, 자유시장에 맡겨 놔야 한다”며 “민주당을 지역구에서 찍은 분들이 야권 비례 정당을 많이 찍을 것이다. 그러면 전체 파이는 우리가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