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9일 원금 손실 우려가 높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해 은행들의 소비자보호 조치를 두고 ‘자기 면피’라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은행들이 ELS 판매과정에서 자필 자서를 받고 녹취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판매 적합성 원칙 등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이날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어볼 수 있다”면서 “설명 여부를 떠나서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솔직히 저도 수십장짜리(설명서)를 보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질문에 ‘네, 네’를 답변하라고 해서 했는데 그것만으로 책임이 면제될 수 있는지는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LS는 만기 안에 기초자산의 가격이 정해진 기준(녹인·knock-in, 원금 손실 발생 구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미리 정해둔 원금과 이자를 주는 파생상품이다. 2021년초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판매된 ELS의 경우 현재 상당수가 이미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
판매된 홍콩 H지수 연계 ELS 상품들이 내년 대규모 원금손실이 확정될 경우 은행들은 고객들의 불완전판매 항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은행들은 2021년 3월 금융소비자 보호법 실행을 앞두고 손실 가능성이 높은 ELS가 판매된 만큼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녹취는 물론 자필 서명 등 판매과정이 한 층 강화돼 불완전판매 여지가 적다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이를 두고 “(은행 등은) 자필 자서를 받고 녹취를 확보했다며 불완전 판매 요소가 없거나 소비자 피해 예방을 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면서 “그러나 적합성 원칙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상품 판매 취지를 생각하면 자기 면피 조치를 했다는 것으로 들리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금융사와 소비자 간) 어떤 책임 분담 기준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연내 기초 사실관계를 좀 파악하려고 노력 중인데, 일부 민원이나 분쟁 조정 예상 상황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투자 상품이나 보험상품 등 설명 관련해서 지나치게 형식적이면서 오히려 금융회사에 면책의 근거만 주는, 소비자들은 실질적으로 고지를 못 받으면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원장은 홍콩 H지수 연계 ELS를 집중적으로 판매한 국민은행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총 19조원 가운데 8조원을 1개 은행, KB국민은행에서 한 건데, 한도 운운하지만, 한도 문제가 아니다”라며 “신뢰와 권위의 상징인 은행 창구로 찾아온 소비자에게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은행 측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