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도 딸 걱정에 여념 없는 엄마 복자(김해숙)에게 어느 날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죽은 지 3년이 돼 이승에서 사흘을 보낼 수 있는 휴가를 얻은 것. 곧장 지상으로 온 복자는 예상과 다른 현실에 충격을 받는다. 미국 명문대 교수였던 딸 진주(신민아)가 미국은커녕 자신이 생전 기거하던 시골집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어서다. 그런데 딸 상태가 조금은 심상치 않다. 돈을 벌 생각도 없어 보이고, 잠을 자다 돌연 냇가로 뛰쳐나가더니 울음을 토해낸다. 대체 무슨 일인 걸까? 복자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영화 ‘3일의 휴가’(감독 육상효)는 부모와 자식 관계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며 볼 만한 작품이다. 하늘 아래 모두 같은 가족은 없다고 해도 공감할 여지가 가득하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딸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복자의 애틋한 마음과 그런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했던 진주의 감정선은 어느 누구나 겪을 만한 보편 정서를 건드린다.

복자의 휴가엔 절대적인 규칙이 있다. 진주와 접촉해선 안 되고, 진주가 자신을 볼 수 없으며, 진주의 행복한 기억만을 담고 와야 한다는 것. 하지만 복자가 지켜만 보기엔 진주는 영 불안정하다. 울적해하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쓰여 어쩌질 못한다. 원래의 삶으로 되돌아가길 바라는 복자의 바람과 달리, 진주는 사무치는 회한에 괴로워한다. 엄마에게 못되게 굴던 일들만 떠올라 마음을 짓눌러서다. 복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도 진주에겐 크나큰 응어리로 남았다. 그런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복자는 제 처지가 한스럽기만 하다. 

무거운 감정들이지만 극 전반을 이루는 분위기는 담담하고 담백하다. 영화에는 감정 과잉된 부분이 없다. 복자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가 딸을 다시 보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물 흐르듯 흘러간다. 시골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진주 모습 역시 무해하게 다가온다. 잔잔한 영상이 주는 묘한 위로가 매력적이다. 저승사자격인 가이드(강기영)의 어수룩한 모습과 진주 친구 미진(황보라)의 활력 가득한 면이 각각 재미를 더한다. 진주의 뛰어난 요리 솜씨는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영화는 단조로움을 탈피하기 위해 몇몇 설정을 덧대 전개에 힘을 싣는다. 금기를 제시하며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을 순차적으로 고조시킨다. 생활감 있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금세 관객 마음을 쥐고 흔드는 김해숙의 감정 연기가 일품이다. 신민아는 딸로서 역할에 충실하다.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든 덕에 관객이 이입하고 기댈 만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자잘한 코미디 요소는 곳곳에서 분위기를 환기한다. 이를 통해 영화 속 감정을 관객에게 서서히 스미게 하는 육상효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3일의 휴가’를 관람할 때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건 휴지다. 어느 순간 속수무책으로 눈물샘을 자극하기 때문에 휴지 지참을 권한다. 극 중 모녀가 처한 상황에는 쉬이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모녀가 느끼는 감정만큼은 확실하게 공감할 수 있다. 감정을 쥐고 흔드는 힘 역시 여기서 나온다. 보고 나면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 한 통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담백하고 진솔해서 더 뭉클하게 기억되는 ‘3일의 휴가’다. 오는 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5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