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된 사상 검증…‘집게손 논란’ 이제 끝내야

‘게임’이 된 사상 검증…‘집게손 논란’ 이제 끝내야

피해 당사자 ‘댓서’, “작업물로 누군가를 조롱한 적이 없다”
장혜영, “창작 노동자에 대한 차별 조장과 폭력을 단호히 차단해야”
“억지 논란에 공적 자원 들어가는 것, 한심하고 아쉽다” 한목소리

기사승인 2023-12-08 17:58:23
‘“페미니즘 마녀사냥을 멈춰라!”, 게임·웹툰 등 온라인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 긴급 토론회 전경. 사진=차종관 기자

일부 게임 이용자의 민원을 넥슨 등 게임업계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동안, 페미니즘 사상 검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게임’이 됐다.

‘넥슨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사태’를 끝내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창작자⋅노동계⋅학계⋅언론⋅법조계가 뭉쳐 문제의식과 대책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페미니즘 마녀사냥을 멈춰라!”, 게임⋅웹툰 등 온라인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 긴급 토론회는 8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의원 장혜영 의원실, 한국여성민우회, 한국게임소비자협회, 전국여성노동조합, 정의당 여성위원회가 공동 주최했다. 주최측은 수어통역과 문자통역, 생중계를 준비했다.

1부에서는 ‘넥슨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사태’에 대한 경과 보고와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당사자 ‘댓서’의 발언문 대독이 있었다. 2부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문제의식과 대책을 공유했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차종관 기자

인사말에서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온라인게임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은 민주주의와 노동권에 대한 침해로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당혹스러운 마녀사냥, 부당한 ‘남혐’ 몰이가 선을 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게임사는 진실에 기반한 대응이 아니라 비상식적인 갑질로 사건의 해결이 아닌 문제 왜곡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진단했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사진=차종관 기자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할 게 이렇게 많은데 억지 논란에 공적 자원이 들어가는 것이 한심하고 아쉽다”며 “무조건 사과가 아닌 창작 노동자에 대한 차별 조장과 폭력을 단호히 차단했어야 했다”고 게임업계를 비판했다.

페미니즘 사상 검증 피해자인 ‘댓서’는 장 의원이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성평등을 지지하겠다는 뜻으로 해당 트윗을 작성했으며 작업물로 누군가를 조롱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실체하지 않는 혐오 표현 수정하느라 많은 인력이 낭비되고 있다. (게임사는) 더 이상 논리에 맞지 않는 소수 악성 민원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전했다.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 사진=차종관 기자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은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이용자들의 또 다른 게임이 됐다”며 일부 남성 이용자들의 방문 시위, 항의 메일, 전화, 악플 등 집단적 테러를 지적했다.

김 조직국장에 의하면 과거 페미니즘 사상검증 대상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여성 프리랜서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 남성창작자, 하청업체까지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김 조직국장은 “넥슨 경영자들 또한 이용자들 주장에 동의하며 함께 ‘사상 검증 게임’에 참여한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혐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라는 말이라니 너무나 모순적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회사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 방법을 검토해야 하며, 국회도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모든 노동자의 근로기준법 적용, 산업안전보건법의 프리랜서 적용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사진=차종관 기자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페미니즘 사상 검증은 우선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며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페미니즘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생계와 직업이 위협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게임업계는 지금이라도 소비자의 정당한 의견이라는 외피를 둘러싼 페미니즘 백래시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발언했다.

이민주 페미니스트연구웹진 Fwd 연구자. 사진=차종관 기자

이민주 페미니스트연구웹진 Fwd 연구자는 넥슨을 시작으로 대다수의 국내 게임사, 빙그레와 포스코까지 집게손이 ‘남성 혐오’이자 ‘페미’의 상징이라며 문제 삼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수용했음을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 페미니즘이 사상 검증 및 공격 대상으로서 사회적 낙인이 찍혔다고 진단하며, 이를 여성⋅페미니스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위협받는 문제적 상황, 즉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라고 규정했다.

또한 “넥슨은 이번 사태에서 소비자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피해자로서 위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억지 논란을 만들어 기업에 시위하는 소비자 집단을 만들어 낸 근본적인 원인은 넥슨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이 연구자는 “보다 강제력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기업과 소비자의 시장 이익과 권리 추구 행위가 위법하거나 다른 사회 구성원의 시민으로서 기본권을 해치는 방식일 경우에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 사진=차종관 기자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는 “이런 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면 게임 기업들이 진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커뮤니티 플랫폼은 악성 이용자의 부적절한 활동을 중단시킬 책임이 있다”며 “사업자가 사이버 범죄를 방조한 경우, 해당 커뮤니티 운영에서 발생한 광고 수익은 범죄 수익으로 규정하자”고도 제안했다.

채윤태 한겨레신문사 기자. 사진=차종관 기자

채윤태 한겨레신문사 기자는 페미니즘 사상 검증 등 일련의 사태를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했다.

채 기자는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서서히 사라지게 된 것은 이성과 제도의 발달 덕분”이라고 짚으며 마녀사냥을 종식할 이성적 논의와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사태 전말을 커뮤니티 여론 형성 과정과 엮어 설명한 채 기자는 수년간 반복된 게임업계 마녀사냥의 역사를 짚기도 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차종관 기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인이 앞장서서 가짜뉴스를 퍼트려서는 안된다. 혐오가 만연할수록 정치권의 책임을 되새겨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반페미니즘 정서를 이용해 자신의 몸집을 키워온 정치인들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자신의 언행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류하경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 사진=차종관 기자

류하경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는 페미니즘 마녀사냥에서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 문제 및 구제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집게손가락 표시를 했다는 물리적 사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해당 근로자를 비난하는 외부 여론이 있다고 하여 이를 이유로 사용자가 해당 관련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분을 하는 것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 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집게손 고의성 여부도 다뤄야 하지만, 만약 고의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상관관계일뿐 인과관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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