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잡아가세요”…‘중독 말기’ 마약사범도 환자다 [약도 없는 마약②]

“우리 아들 잡아가세요”…‘중독 말기’ 마약사범도 환자다 [약도 없는 마약②]

기사승인 2023-12-12 06:00:47
마약엔 치료 ‘약’이 없다. 마약을 끊어야만 호전된다. 마약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뇌 질환이기 때문에 혼자 힘으론 재발을 막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약’도 없다. 치료·재활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국내 인프라는 열악하다. 해마다 마약 중독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마약 치료 실태를 짚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어머니는 점점 힘에 부쳤다. 60대 아들이 마약에 취해있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80대 어머니의 주름살도 하나둘 늘어났다. 결국 힘으로 말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수화기를 들었다. 112 버튼을 눌렀다. “우리 아들이 마약을 해요. 좀 잡아가세요.”

아들도 한때 단란한 가족의 일원이었다. 마약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았다. 고시원에 살게 됐고, 직장도 그만뒀다. 조현병, 조울증, 강박장애, 불안장애, 수면장애…. 온갖 정신질환이 아들을 덮쳤다. ‘메스 마우스(Meth Mouth·필로폰 후유증)’로 치아가 모두 빠져 밥알을 씹기도 힘들었다.

“진짜 끊을 거야”라며 반복되는 거짓말. 배우자와 자식이 등을 돌리고, 30년 지기 친구들이 떠난 자리엔 같이 마약을 하는 이들만 남았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신고였다. 교도소에 가면 강제로 마약을 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는 생각했다.

법무부 소속 정신질환 범법자 치료감호소인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 선고를 받은 범법 정신질환자 등을 격리·수용하는 기관인 이곳에선 흔한 이야기다. 이곳에는 부모의 신고로 수감된 마약 중독자들이 많다. 대부분 ‘갈 데까지 간’ 말기 환자들이다. 이들에게 치료와 사회 적응 훈련을 해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 국립법무병원의 목표다.

마약 중독자는 범죄자인 동시에 환자다. 말기까지 진행되면 본인 의지론 극복이 힘들다. 이러한 탓에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2022년 기준 35%로, 다른 범죄에 비해 높다. 마약 단속보다 치료가 필요한 이유다. 보호자들이 직접 신고하는 사연도 여기에 있다. 

최근 충남 공주시 국립법무병원에서 만난 조성남 병원장은 “마약사범은 중독이란 뇌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라며 “교도소에 온다고 치료가 되는 건 아니다.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치료하지 않고 사회에 내보내니 재범률이 높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립법무병원 환자 대부분은 마약 중독으로 가족이 떠나고 뇌가 망가져 모든 것을 잃은 상태로 온다. 보호자들에 의해 입원한 경우도 꽤 된다. 조 원장은 “마약 중독 70%가 ‘말기’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약 중독 ‘말기’는 의학 용어가 아니다. 마약 중독을 네 단계로 나눴을 때 다양한 약물을 자주, 장기간 사용하면 강박적 사용 단계를 말기라고 표현한다. 마약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존하게 되는 상태다. 보호자가 마약 중독 말기 환자를 신고하는 일 역시 드물지 않다. 지난 3월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아들의 상습마약투약 사실을 직접 신고한 일도 있었다. 남 전 지사는 재판 증인으로 나와 “피고인 본인이 (마약을) 끊기 어렵다고 판단해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끊겠다고 생각해 자수하고 가족이 신고까지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국립법무병원 전경. 마약중독자를 비롯한 정신질환자 등의 치료감호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사진=김은빈 기자

‘마약 중독’이란 질병, 뇌 어떻게 망가뜨리나

마약 중독은 벗어나기 어렵다. 한 번만 해도 중독되기 때문이다. 말기가 될 때까지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다. 조 원장은 “도파민이 한꺼번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 뇌의 보상회로가 다음부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서 “뇌는 강렬한 경험을 각인하는 습성이 있어 그 기억을 평생 남겨놓는다. 이후엔 약물만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중독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마약을 처음 할 때 도파민이 가령 500개가 분비된다면 다음엔 400개, 그 다음엔 300개, 200개, 100개만 나온다. 말기가 되면 뇌의 보상회로 기능이 파괴돼 마약을 해도 나올 도파민이 없다. 밥을 먹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 건 생존을 위해서다. 마약에 중독되면 일상생활에서 재미를 못 느껴 죽음에 가까워진다.

결국 말기가 되면 마약은 더 이상 쾌감을 위한 도구가 아닌, ‘회피’ 수단이 된다. 조 원장은 “말기 단계에 이르면 마약을 해도 쾌감을 거의 못 느낀다. 뇌 일부가 파괴된 상태라 도파민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어두운 현실을 탈출할 방법이 없으니, 그 순간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마약을 한다”고 말했다.

“만약 모든 걸 잃기 전, 치료받았다면”

말기 환자가 재범을 저지르지 않는 방법은 치료뿐이다. 마약을 손댈 수 없는 환경에서 강제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상담을 받으면 자신이 마약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치료를 받고 출소해 사회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하는 마약사범도 많다.

조 원장은 “많은 환자들이 모든 것을 잃기 전에 진작 치료받을 걸 하고 후회한다. 치료를 받은 뒤 자신이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며 “말기에 이르기 전에 치료를 받았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텐데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마약사범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선 치료가 필요하다. 조 원장은 “조울증, 피해망상 등을 겪다가 살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마약을 하면 정신병도 같이 온다. 마약류를 하면 도파민을 과다 분비하는데, 정신병 치료약 대부분은 도파민을 억제하는 기전을 쓴다”고 설명했다.

마약사범들을 왜 국가가 무료로 치료해야 할까. 조성남 원장은 답한다. 

“마약 단속만 한다고 늘어나는 재범을 막긴 어렵다. 치료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마약사범이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국가가 치료해주는 게 아니다. 마약 중독으로 뇌가 망가져 정신질환으로 범법을 저질렀으니,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중독 치료를 잘 받아야 재범을 하지 않고 주변에 마약을 권하는 일이 사라진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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