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시선]계묘년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전북인

[편집자시선]계묘년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전북인

잼버리 파행에 새만금 예산 삭감...우울감 전국 최고 ‘불명예’
지역 정치력, 도정 행정력 부재 탓 아닌지 ‘깊은 성찰’ 필요

기사승인 2023-12-26 14:15:05
정부의 새만금 S0C 예산 삭감에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이 지난 9월 7일 국회 본청 앞에서 대규모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쿠키뉴스 전북본부 데스크칼럼 <편집자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현안들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격려할 것은 뜨겁게 격려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정치적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전라북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2023년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계묘년 올 한해 전북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한 해였다. 악재가 거듭되면서 희망과 기대보다는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도민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일들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6조원이 넘는 새만금 대기업 유치, 새만금 2차전지 산업단지 선정,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 등 청사진이 제시되며 도민들의 기대가 컸으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준비 부족과 미숙한 운영으로 사상 최악의 잼버리라는 불명예 속에 파행으로 끝나면서 시련이 찾아왔다.

새만금 잼버리는 폭염 속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화장실, 샤워실 등 시설 미비로 보건·위생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급기야 미국과 영국 등 일부 나라 대원들이 새만금에서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기에 태풍 카눈까지 북상하면서 잼버리 야영장은 야영장으로서 기능도 상실하고 참가 대원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행사를 이어갔다. 또 잼버리 기간 중 성추행 사건과 바가지 상혼 등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최악의 행사가 됐다. 

엄청난 경제 효과와 세계적인 명소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북도의 장담이 무색해졌고 잼버리 파행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감사원의 대대적인 감사 착수와 주최 측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도 이어졌다.

정부는 잼버리 파행 책임이라도 묻듯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당초 6626억원이 반영돼 있던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기재부 심사 과정에서 5147억원(78%) 삭감했다. 기재부 심사 단계에서 80% 가까이 삭감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

새만금 예산 일부가 복원됐지만 허망하기 짝이 없다. 여야가 3000억원을 증액해 기존 부처 요구 예산이었던 6626억원의 67% 수준인 4479억원으로 결정됐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안 예산과 대비하면 32.4%가 삭감된 것이다.  

새만금 관련 예산은 지난해 1조 4136억원, 올해 1조 874억원에 비하면 예산 복원이 얼마나 초라한 규모인지 알 수 있다. 국회에서 예산 심사를 앞두고‘새만금 예산 원상 복원’을 약속했던 더불어민주당의 구호가 무색해졌다. 내년 착공키로 했던 새만금국제공항은 늦어지고 새만금 인입철도는 첫 삽도 뜨지 못하게 됐다.

또 세계 생활체육인의 축제인 ‘2023 전북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대회’도 흥행에 참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71개국에서 1만 4177명의 생활체육인이 참가했다지만 대회를 3개월여 앞두고 해외 참가자가 고작 1800여명에 불과하자 ‘돈 주고 선수를 모집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부푼 기대와는 달리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국은 물론 도내에서도 태반이 행사의 존재를 몰랐고 코로나 이후 국가 경제도 어려운데 헛돈을 썼다는 혹평까지 나왔다. 1천만원이나 들여 만든 홍보물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선정적인 메시지로 ‘19금(禁)’ 논란까지 일었다.  

지난 2001년부터 쭉 전주를 연고지로 했던 KCC이지스 농구단이 떠난 것도 지역 농구팬들에게 당혹감과 실망감을 줬다. 2001년 5월 대전 현대 걸리버스를 인수한 KCC가 연고지를 대전에서 전주로 이전한 지 22년 만에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겼다.

KCC농구단은 전주시가 체육관 건립 약속을 7년째 지키지 않는 등 홀대와 신뢰 문제를 들어 이전을 결정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전주시 책임이 크다. 

‘전라도 정명 1천년’을 기념해 5천년 역사를 총망라한 사서인 ‘전라도 천년사’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전라도 천년사’의 서술 내용이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任那)일본부’설의 근거로 쓰인 ‘일본서기’ 기술 내용을 차용했다며 ‘친일사관’ ‘식민사관’에다 ‘민족 반역’이라는 비난까지 나온다.

시민단체, 국회의원, 지방의회까지 나서 식민사관에 근거한 역사서술을 바로잡고, 민족사관에 입각한 천년사를 정립하라고 주장했고 일부 시민단체는 ‘전라도 천년사’를 폐기하지 않고 배포하면 김관영 지사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시위에 나서고 있어 올해가 가지 전 해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도민을 실망시키고 충격에 빠트린 사건들이 많아서인지 전북도민들이 2023년 한해를 전국에서 가장 우울하게 보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충격적이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3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전북지역은 올해 ‘우울감 경험률’에서 전국 17개 광역 시·도에서 가장 높은 9.4%를 기록했다.
 
우울감 경험률 지표는 최근 1년 동안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우울감(슬픔이나 절망감)을 경험한 사람의 백분율인데 전북은 지난해 7.8%에서 1.6%p 가량 급등했다. 특히 전주시는 우울감 경험률이 13.2%로 도내 가장 높고 전국에서는 2위다.

물론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절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년 1월18일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를 뒷받침할 ‘특별법 개정안’의 공포가 이번 주 마무리되면 전북은 특별자치도로서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지난 8월 30일 발의된 후 100일 만의 성과로 개정안에는 전북특별자치도가 글로벌 생명경제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담고 있다. 

또 ‘2024년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구 세계한상대회)’ 유치도 도내 기업들에게는 해외 시장 개척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도는 내년 10월 열릴 대회를 통해 도내 중소기업과 청년 기업가들의 해외 진출과 수출 확대를 지원한 목표다.

올 한해 도민 모두가 애쓰고 고생했다. 그러나 도민들이 어느 해보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한 한 해를 보냈다는 데는 지역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도민들의 뜨거운 목소리가 무시당하고 자존감이 무너진 것은 지역 정치인들의 정치력과 도정의 행정력 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해를 보내며 무엇이 강한 전북, 융성한 전북의 길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침 내년은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총선의 해이기도 하다.  
김영재 기자
jump0220@kukinews.com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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