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대부분이 문을 닫는 연휴 기간, 공휴일, 야간 등 취약시간대에는 누구나 비대면으로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5일부터 비대면진료 문턱을 확 낮추면서다.
정부는 지난 6월1일 시범사업 시행 이후 6개월간 현장에서 제기된 다양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이번 보완대책을 마련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하루 평균 비대면진료 건수는 7453건이었으나, 시범사업 시행 이후 4578건으로 38.5% 크게 감소했다. 대상환자 범위가 협소한 탓에 비대면진료가 필요하지만 이용할 수 없는 환자들이 많았다.
이번 보완방안은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써 비대면진료를 허용한다는 원칙 아래, 국민의 의료접근성을 강화하고 의료진의 판단을 존중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비대면진료 대상 대폭 확대…휴일·야간엔 전면 허용
우선 쟁점이었던 시범사업의 재진 기준 모호성을 해소했다. 그간 의료기관에서 비대면진료를 받는 경우 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 그 외 질환자는 30일 이내로 구분해 대면진료 인정 기간을 다르게 적용했다. 또 동일질환에 한해 비대면진료가 가능했다. 만성질환도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관리료 산정이 가능한 11개 질환에만 국한돼 있다.
이를 두고 현장에선 환자가 어떤 질환에 해당하는지 비대면진료 예약 접수 시엔 알기 어려운 데다 진료를 해야만 확정할 수 있어 대상환자 판단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라는 기준은 너무 길고, 그 외 질환자는 30일 이내라는 기준이 너무 짧아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복지부는 △6개월 이내 대면진료 경험이 있는 환자에 대해서는 △다니던 동일 의료기관의 △의사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질환에 관계없이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도록 기준을 조정하기로 했다.
대면진료 경험자가 원칙이지만, 의료접근성이 낮은 환자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대면진료 경험이 없어도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 이에 더해 의료취약지 대상지역 범위도 넓히기로 했다.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의료취약지를 뜻하는 ‘보험료 경감 고시상 섬·벽지’ 지역에 응급의료 취약지(98개 시·군·구)를 추가하기로 했다.
특히 휴일이나 야간에는 대부분 의원급 의료기관이 문을 닫아 진료를 받기 어렵다는 점도 손봤다. 그간 대면진료 경험이 있어야만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어 아이를 기르는 부모와 병원진료를 위해 연가를 내야만 하는 직장인 등은 제때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이에 복지부는 진료 이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비대면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번 대책은 경증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의 증상과 상태 변화에 대해 최소한 의사와 상담을 하고 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하거나, 다니던 의원의 진료 개시 전까지 진료·처방·투약 등 적절한 조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의약품은 약국 방문수령 원칙이 유지된다. 재택수령은 섬·벽지 거주자, 65세 이상 장기요양등급자, 등록장애인, 감염병 확진 환자, 희귀질환자에 한해 가능하다.
사후피임약 비대면 처방 불가…안전성 높인다
이번 대책에는 비대면진료의 안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도 담겼다.
비대면진료를 통해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사후피임약은 고용량의 호르몬을 포함하고 있어 부작용이 크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정확한 용법을 지켜 복용해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시범사업 기간 동안 남성이 처방받는 등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후피임약과 함께 오남용 우려가 제기돼 왔던 탈모, 여드름, 다이어트 관련 의약품은 비대면진료로 처방이 가능하다. 복지부는 안전성 관련 과학적 근거, 해외사례 등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또한 처방전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관리방안도 마련했다. 처방전은 팩스 또는 이메일 등을 통해 의료기관에서 약국으로 전송하고 있지만, 복사본 또는 이미지 처방전은 종이 처방전에 비해 위·변조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방전은 의료기관에서 약국으로 직접 전송토록 지침을 명확히 했다. 또 모바일 앱 이용 시 환자의 이미지 처방전 다운로드는 금지된다. 향후 근본적인 처방정보 전달방식 개선방향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아울러 대면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방문 권유, 비대면진료 후 처방 여부 등은 환자의 요구가 아닌 전적으로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도록 했다. 이를 위해 ‘대면진료 요구권’을 명시하기도 했다. 비대면진료 시 의사가 의학적 판단으로 비대면진료가 부적합한 환자를 진료하지 않아도 의료법상 진료 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골자다.
복지부 관계자는 “감염병 위기 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의료체계에서 국민들이 상시적으로 안전하게 비대면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어가야 하는 시점”이라며 “정부는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대비해 시범사업을 통해 적절한 모형을 개발하고 실시 근거를 확보해 제도를 보완·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