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을 계기로 여야가 ‘증오 발언’을 한 정치인에게 패널티를 주는 방안을 검토한다. 다만 ‘증오 발언’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는 탓에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증오 정치’는 이 대표 피습 사건의 근본적 원인으로 꼽힌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증오의 정치 구조가 정치인을 향한 극단적인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야의 ‘증오 발언’은 회기를 거듭할수록 심화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87년 민주화 이후인 13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모욕·욕설·인신공격·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제출된 국회의원 징계안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이번 21대 국회의 경우 지난해 기준 27건으로 역대 최다 기록이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증오 정치’에 정치권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도 극단적 증오 정치 구조가 배경이란 것이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지지자들이나 국민을 양극단으로 몰아넣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며 “정치권 책임이 크다”고 반성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는 검투사 정치는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 지도부는 ‘증오 발언’에 대해 4월 총선 공천 불이익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증오 정치를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에게 공천 배제 등 강력한 페널티를 줘 국회 입문 단계부터 철저히 걸러내겠다는 취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극단적인 갈등과 혐오의 정서는 전염성이 크기 때문에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금세 퍼진다”며 “극단적인 혐오의 언행을 하시는 분들은 우리 당에 있을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공천 배제를 시사했다.
민주당도 공천관리위원회를 중심으로 증오 발언 여부를 공천 심사에 반영할 방침이다. 강선우 대변인은 5일 기자들과 만나 ‘정치인의 막말 여부를 공천 심사 과정에 반영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향후 공관위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예비 후보자 검증 신청 서약서 항목에 ‘막말 검증 기준’을 추가한 바 있다.
다만 ‘증오 발언’에 대한 구체적 기준 없이는 공천 불이익 방침의 효과가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아직 각 당은 ‘증오 발언’에 대한 정의를 포함해 표현 수위와 사회적 물의의 범주 등을 규정한 바 없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러한 시도에 대해 “현재 ‘증오 발언’을 객관화·계량화해 평가할 기준이 없다”며 “주관적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면 곧장 공천 불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증오 발언에 대한 기준 없는 불이익 방침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