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2004년 영화 ‘범죄의 재구성’이었다. 주인공만 다섯인 영화는 파격이었다.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작품이 그의 이력을 수놓았다. 여러 주인공이 나오는 이른바 ‘떼주물’로 자신만의 흥행공식을 써 내려간 명연출가는 도사와 외계인의 만남이라는 한국형 SF의 새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진의 그림자가 그를 뒤덮었다. 힘내라는 응원 속 각종 고뇌를 거쳐 그는 반전의 한방을 준비했다.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 ‘외계+인 2부’를 연출한 최동훈 감독 이야기다.
지난 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최 감독에게선 긴장감 속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영화 상영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관객 반응이 가장 궁금하다”면서도 새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 기뻐 보였다. 개봉판은 52번에 걸친 편집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1부를 마친 후 원동력을 얻기 위해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은 감독은 장면들의 배열을 바꾸며 이야기를 다시 엮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담당한 CG팀과 음악감독까지 덩달아 재편집 작업에 뛰어들었다. 1부를 보지 않은 이들과 관람한 지인, 친동생, 배우 등 주변에도 꾸준히 조언을 구했다.
관객을 ‘외계+인’의 세계에 몰입시키기 위한 최 감독의 고민은 1년 반 가까이 이어졌다. 2부는 “1부를 안 보고도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메모지에 새로운 수정 사항을 적지 않을 때까지 편집했다. 최 감독은 “더 이상 고칠 게 없을 때까지 했다”고 돌아봤다. “개봉해 관객과 만난 최종판이 곧 감독판”이라고 자부하는 이유다. 영화는 SF 판타지와 스펙터클한 모험물을 표방하면서도 감정을 깊이 다루는 드라마 요소가 강하다. 감독은 여기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메시지를 추가했다. “멋진 성취감 뒤에 숨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표현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최 감독은 ‘전우치’를 촬영하던 2000년대 말부터 ‘외계+인’의 세계관을 떠올렸다. “도사가 나온다면 외계인이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외계 죄수와 외계 대기 등 구체적인 요소를 구상했다. 원작 없이 한 세계를 만들다 보니 시나리오 제작에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애정을 듬뿍 담았으나 결과는 아쉬웠다. 그럼에도 뚝심을 잃진 않았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사랑이 가득해서다. ‘외계+인’ 시리즈는 그의 특기인 떼주물이다. 최 감독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기 마련”이라면서 “내 영화엔 그런 인물이 여럿 나올 뿐”이라고 했다.
제 삶의 주인공들이 서로 맞부딪히며 인물이 가진 세계와 이야기 규모는 확장한다. 이 같은 공식은 최 감독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창조한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 등의 세계들은 세월 흐름에 발맞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최 감독은 “대중이 아직도 ‘타짜’를 즐기고 이야기를 조합하는 모습을 볼 때면 재미를 느낀다”면서 “‘외계+인’ 역시 어떤 운명일지는 모른다. 이 역시도 관객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외계+인’은 한 차례 작은 변모 과정을 거쳤다. OTT에서 공개 이후 “시대를 앞선 비운의 명작” 등 호평이 줄을 이어서다. 그는 “한 명의 감독이자 관객으로서, 만들고 싶은 욕망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어우러져 만든 영화”라며 “‘외계+인’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며 슬쩍 웃었다. 그러면서 “다른 작품과 달리 ‘외계+인’은 손이 많이 가고 우여곡절도 많지만 정성과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 아이”라고 했다. 최 감독은 “극장을 나오는 관객들에게 기억에 남을 작품이라는 칭찬이 듣고 싶다”면서 “이야기보다는 캐릭터들이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