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영업사원 만재(조진웅)는 돈이 필요하다.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안정된 가정을 꾸려야 해서다. 급전을 마련하려던 중 이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만재. 그날부터 만재는 바지사장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1000억원짜리 횡령사건의 누명을 쓰고 죽은 인생을 살게 된 만재. 정치판에서 이기기 위해 그가 필요한 ‘정치꾼’ 심여사(김희애)로 인해 967일만에 다시 서울 땅을 밟는다. 이제 만재는 복수의 칼날을 간다.
영화 ‘데드맨’(감독 하준원)은 시종일관 이름값을 강조한다. 이름으로 흥한 자는 이름으로 망하는 법. 이름을 팔아 부를 축적한 만재는 그 이름으로 인해 인생을 빼앗긴다. 그토록 지키고 싶던 가정도 붕괴됐다. 심여사는 독이 잔뜩 오른 만재를 이용하려 든다. 만재는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문식(김원해)의 딸 희수(이수경)와 손을 잡는다. 정치 자금으로 흘러간 1000억원, 자신의 이름을 죽인 이 돈의 출처를 쫓는다.
정치와 경제범죄를 아우른 작품이다. 때문에 내용이 복잡하다. 이해해야 할 게 많다. 외워야 할 인물은 많지 않지만 돈에 얽힌 이름과 흐름이 어지럽다. 극은 시종일관 이야기를 성실히 끌고 간다. 하지만 재미를 느낄 만한 부분이 드물다. 전개는 착실히 이어지지만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상영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이유다.
극을 감싼 포장지는 화려하다. 잔뜩 힘 준 연출과 때깔 좋은 화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야기에 매력이 떨어지니 이 마저도 공염불로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기시감이 가득하다. 김희애가 연기한 심여사는 배후에서 정치판을 주무르는 책사다. 그가 출연한 넷플릭스 ‘퀸메이커’ 황도희와 비슷하다. 조진웅 역시 여타 작품에서 봐왔던 모습 그대로다. 한쪽은 지나치게 고상하고 다른 쪽은 너무도 익숙하다. 이들뿐 아니라 출연진 대부분이 캐릭터성을 부각해 연기한다. 비장한 분위기에 배우들까지 잔뜩 힘줘 연기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친다.
오락적 재미가 부족한 건 ‘데드맨’의 약점이다. 지나치게 설명형 대사가 많아 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개연성 역시 부실하다. 이 가운데 멋을 살리기 위해 설정된 몇몇 장면이 힘을 뺀다. 미장센을 중시한 영상화보 같지만 알맹이가 약해 극이 내내 겉도는 느낌을 준다. 무게감은 그득한데 담백한 대목이 없어 피로감이 커진다.
소재는 흥미롭다. 타 작품에서 주요하게 다루지 않던 바지사장을 소재로 이야기를 열심히 꾸몄다. 하준원 감독의 야심이 읽히는 장면이 여럿이다. 영상미가 돋보이는 화면과 멋진 명언으로 가득 찼다. 음향과 음악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다. 데뷔작인 만큼 최선을 다하고자 한 감독의 정성이 느껴진다. ‘퀸메이커’ 속 김희애의 활약이나 조진웅의 기존 필모그래피가 좋았다면 한 번쯤 시도할 만하다. 다음 달 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등급. 상영 시간 108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