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정선아 “메시지를 곱씹으며” [쿠키인터뷰]

‘드라큘라’ 정선아 “메시지를 곱씹으며”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4-01-31 08:00:02
배우 정선아. 오디컴퍼니

테이블 위엔 흑임자 인절미가 놓여 있었다. 배우 정선아가 직접 준비한 간식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출산 후 복귀작으로 택한 뮤지컬 ‘이프덴’으로다. 예부터 떡은 기쁨을 나누고 덕담을 전하는 고리. 배우는 캐릭터라는 고리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관객과 소통한다. 정선아도 그렇다.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디바는 “작품 속 가사와 대사가 삶의 순간순간에 박혔다는 관객들 반응에 나도 위로받는다”고 했다.

요즘 정선아가 관객과 나누는 이야기는 생을 뛰어넘는 러브 스토리다.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미나 머레이 역을 맡았다. 미나는 전생에 드라큘라와 사랑을 나눈 사이. 피를 마시며 영생하는 드라큘라를, 미나는 여러 삶을 경유해 다시 만난다. 30일 서울 성수동1가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정선아는 “10년 전 초연 땐 날 것의 열정으로 작품에 임했는데 이젠 내공이 생겼다. 한 곡 안에서도 전달할 메시지가 많아 하나하나 곱씹는다”고 말했다.

이집트 공주(뮤지컬 ‘아이다’ 암네리스)부터 클럽 가수(뮤지컬 ‘멤피스’ 펠리샤)까지, 작품으로 시공을 여행하고 신분도 넘나들던 정선아에게도 미나는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드라큘라’에 처음 공연할 땐 “미나의 전생으로 들어가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다르다. “나이를 먹으며 시야가 넓어졌는지” 미나와 드라큘라의 초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는다고 했다. 덕분에 연기는 더 섬세해졌다. 같은 가사라도 1막과 2막에서 담는 감정이 다르다. 1막의 미나가 “전생의 사랑을 거부하는 연약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라면, 2막에선 “드라큘라를 향한 열정적 사랑”을 쏟아낸다.

정선아. 오디컴퍼니

정선아는 드라큘라가 과거를 털어놓는 기차역 장면에서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린다고 했다. “이때 단추가 잘 끼워져야 관객들이 (감정을) 이해하며 2막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얼핏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 미나는 정선아가 가진 강인한 기운을 입어 한층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미나는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단단하고 따뜻한 여성”이란 해석이다. 작품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정선아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 젖은 미소를 띤다. 그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미나와 드라큘라의 죄를 씻어주는 느낌”이라며 “드라큘라가 영원한 안식을 찾았음을 믿고, 그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감정으로 연기한다”고 설명했다.

미나를 처음 연기했던 10년 전엔 이 정도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메시지보단 고음이나 소리에 집중했다”고 했다. 그의 역량을 탓할 수만은 없다. 적지 않은 여성 캐릭터가 남성 주인공의 연애 상대에 머물러 배우의 진가를 보기가 어려웠다. 정선아는 “감초처럼 등장해 인상 깊은 장면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자주 했다”고 돌아봤다. 작품을 고를 때도 “내 캐릭터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귀에 꽂히는 노래가 많은지”를 주로 살폈다.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은 ‘이프덴’이다. 한 여성의 두 가지 삶을 보여준 이 작품은 배우이자 엄마가 된 정선아의 궤적과도 닮았다. 그는 “‘이프덴’엔 기량을 뽐내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한 여성의 인생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메시지를 찾게 한다”며 “그 후론 이 캐릭터가 얼마나 관객에게 이해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무대에 올랐던 이 배우의 앞날이 여전히 기대되는 것도 그래서다. 정선아는 “‘이프덴’으로 내 인생 2막이 열렸다”고 했다. ‘드라큘라’도 그의 인생 2막 초입을 기록하는 작품 중 하나다. 그는 무대 아래에서도 자신을 갈고닦는다. 꾸준히 보컬 수업을 받고 재능기부 등 봉사활동을 하며 사랑을 베풀기도 한다. 정선아는 “한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이유 없이 우울했다”며 “지금은 그저 감사하다. 내가 빛나지 않더라도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관객과 공감하려고 한다.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책임감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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