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주호민씨 자녀 아동학대 사건 판결에서 ‘불법 녹음’이 증거로 인정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판결로 교사들 사이에선 학교 내 불법 녹음이 늘어나고 공교육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판결 과정에서 주씨 측이 아들 외투에 몰래 넣었던 녹음기가 아동학대 증거로 결국 인정됐다. 현장 교사들은 불법 녹음으로 아동학대 남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초등교사 B씨는 “학부모가 학생 휴대전화에 주변 소리 듣기 앱을 깔고 학교에서 나는 소리를 엿듣는 게 현실”이라며 “학생에게 휴대전화를 끄라고 하면 학부모에게 민원을 받는 세상인데 마음이 무겁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초등교사 C씨도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덫에 걸려 아무것도 못 하는데 학교에서 무슨 교육이 이뤄지겠나”라고 꼬집었다.
교육 현장이 교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의 ‘교원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해결서’와 ‘유치원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 해결서’에 따르면, 학부모가 교사 동의 없이 녹음기, 스마트폰 앱 등을 활용해 수업 내용을 녹음하거나 실시간으로 청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이 같은 지침이 뒤집혔다. 교사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불법 녹음은) 교사들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학교 내부 무단 녹음이 합법적으로 용인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교사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처벌이 내려질까 걱정하며 교육활동에 소극적으로 임하겠다는 분위기다. 이날 한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교사들의 무기력한 다짐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D씨는 ‘주호민 특수교사 유죄’라는 제목의 글에서 “더욱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하게 된다”라며 “어차피 1년 보고 말 애들인데 듣기 싫은 말 안 하고 안전하게 지내야겠다”고 적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E씨도 “앞으로 다른 학생을 때리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도 녹음기가 무서우니 ‘하지 마’라고 말만 하고 그 이상의 교육은 하지 말아야겠다”며 “피해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부터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교사 단체들은 ‘불법 녹음’을 증거로 인정한 판결에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은 2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 하동 수원지방법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교사 동의 없이 몰래 들어온 녹음기는 어떠한 훈육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애로 녹음 외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학교생활에 의문이 생기면 상담과 대화를 통해 소통하는 게 상식이다. 재판부는 불법 녹음 자료의 증거 능력을 배제하라”라고 외쳤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오는 5일부터 ‘몰래 녹음 불인정 및 특수교사 무죄 촉구 전국 교원 탄원 서명운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교총 관계자는 “전국 교원 탄원 서명을 시작으로 학교 현장의 현실과 요구를 알릴 것”이라며 “2심에서는 학교 현실과 교육적 목적을 반영한 올바른 판단이 나올 수 있도록 1인 시위, 집회 등 총력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A씨 변호인은 1심 판결에 반발해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김기윤 변호사는 지난 1일 판결 이후 “(피해 아동 측이)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증거 능력을 인정했는데, 경기도교육청 고문 변호사로서 재판부에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며 “교육청에서도 수업 시간에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증거 능력이 없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린 만큼 앞으로 차분하게 항소심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