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환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2주째 돌아오지 않는 데 이어 전임의들도 계약을 포기하고 있다. 병원에 남은 의료진들의 소진도 빨라지고 있어, 의료대란이 눈앞에 닥쳤다는 진단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4일 현장점검을 통해 업무복귀명령에도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 파악에 나섰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9일 100개 수련병원 조사 결과, 9981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 중 9438명에게 업무복귀명령을 내렸다.
지난달 29일까지 복귀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정부의 최후통첩에도 7000명이 넘는 전공의들은 ‘꿈쩍’ 않고 있다. 명령을 받고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는 7854명으로, 불이행 확인서를 징구했다. 불이행확인서를 발급하면 3개월 이상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전임의 이탈 행렬도 감지된다. 병원과 계약을 하지 않거나 포기하는 전임의들이 속출하고 있다.
전임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병원에 남아 1~2년간 세부 전공을 수련하는 의사를 말한다. 입원 환자 관리, 교수들의 진료와 검사 보조는 물론 수술을 돕기도 한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계약을 하려 했던 전임의 절반 이상이 포기 의사를 밝혔다”며 “전공의나 전임의가 절반 이상 줄면 교수들의 피로도가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도 “전임의가 계약을 않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전공의에 비해선 미미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른바 서울 주요 대형병원인 ‘빅5’ 병원의 경우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중이 37%, 전임의 비중은 16%로, 전공의와 전임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이 의료 현장을 떠날 경우 의료 공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빅5 병원의 기능은 축소되고 있다. 4일 복지부가 운영하는 응급의료 정보 제공 모바일 앱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내과계 중환자실(MICU) 환자를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담낭담관질환 신환(새로운 환자) 수용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얼굴을 포함해 단순히 피부가 찢기거나 벌어진 열상 환자의 경우 아예 24시간 응급실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수술 건수도 ‘반토막’이 났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45~50% 정도 수술이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도 “50% 정도 축소된 것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 역시 “수술·입원이 30~40% 정도 조정되고 있다. 진료는 주로 교수가 하기 때문에 크게 변동은 없다”고 전했다.
지난달 19일 시작된 전공의 빈자리가 길어지면서 병원에 남은 의료진들의 업무 과중도 문제다. 대한응급의학회는 4일 성명서를 내고 “현재까지 운영된 비상진료체계는 실상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포함한 일선 모든 의사 선생님들의 고군분투로 간신히 버텨냈던 것”이라면서 “이제 그 노력도 거의 한계에 달했다”고 털어놨다.
정부의 사법절차에 따라 의료 공백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3개월 면허정지’ 처분이 시작되면 전공의 7000여명의 전문의 자격 취득이 1년가량 늦어지게 된다. 빅5 병원 한 관계자는 “전공의들에게 3개월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면 당연히 병원 기능이 그간 정상화되긴 어렵다”며 “병원도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정부는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구제 절차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처분은 불가역적”이라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전공의 수련기간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이상 늦춰진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 공백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선 응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대전·대구·광주 4개 권역에서 ‘긴급대응 응급의료 상황실’을 운영할 방침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마련된 긴급상황실은 서울 지역에서 응급환자의 전원을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전공의들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고 있는 간호사에 대한 법적 보호도 강화한다. 복지부는 지난달 26일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 장이 내부 위원회를 구성하거나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결정할 수 있도록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