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이니 친명이니 요즘 민주당을 보면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왜 이렇게 됐나 싶어서 TV도 잘 안 봐.”
경기 안산 사동에서 만난 60대 남성 김모씨가 한 말이다. 김씨는 최근 안산갑이 민주당 계파 갈등의 싸움터가 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최근 민주당은 4·10 총선을 앞두고 공천 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명계 찍어내기’가 현실화하자 복수의 의원들이 잇따라 탈당하는 가운데, 친문(친문재인)계 대 친명(친이재명)계 인사들이 또 다른 전선을 구축하는 모습이다.
경기 안산갑은 ‘명문(明文·이재명-문재인)대전’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의 맞수로 ‘강성 친명’ 양문석 전 통영·고성 지역위원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원외인사인 양 후보는 당 경남 통영·고성 지역위원장을 지내다 지난해 4월 지역위원장직을 사퇴한 뒤 안산 상록갑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 12년간 전 의원의 아성이 굳건했던 지역이지만, 판세를 가늠하기엔 이르다. 전 의원은 의원 평가 하위 20%를 통보받은 상태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천에서 하위 10%는 경선 득표의 30%를 감산한다. 하위10~20%는 경선 득표의 20%를 감산하는 ‘현역 페널티’ 규정을 적용한다. 이에 따라 전 의원은 경선 득표의 20%를 감산당하는 페널티를 안게 됐다.
양 후보는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강성 지지층’ 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앞서 양 후보는 안산갑 출마 일성에서 “수박 그 자체인 전해철과 싸우러 간다. 수박 자체를 깨뜨려 버리겠다”고 발언해 ‘자객 출마’ 논란에 휩싸였다. 수박은 이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의미로, 비명계 인사를 비하할 때 주로 쓰이는 멸칭이다. 해당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양 후보는 ‘당직 자격 정지 3개월’ 징계를 받았지만, 당 검증위원회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
양 후보는 지난해 9월에도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뒤에서 배후조종하고 상습적으로 혜경궁 김씨 터뜨리고 이재명 녹취록 까고 김부선 사건 부풀렸던 전해철 아니냐”라며 “(전 의원) 스스로 정계은퇴 시켜드리겠다”고 발언했다. 민주당 후보 경선은 권리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를 50%씩 반영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팬덤 ‘개딸(개혁의딸)’들 대부분이 권리당원에 속한다. 전 의원과 비교해 대중적 인지도와 지역 기반이 떨어지는 만큼, 강성 지지층의 입김에 기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포스트 이재명 체제’에 집중한 계파 간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총선을 마치고 4개월 뒤 새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 친명계 내부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친문계가 약진할 경우, ‘이재명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포착된다.
이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안산에 거주한지 10여년이 넘은 이모씨는 “전해철 의원은 장관에 3선까지 한 인물 아닌가. 지역 내에서도 이미지가 괜찮다”라면서도 “문제는 서로 편 가르고 싸우는 모습이다. 안 좋게 보인다”라고 말했다. 안산 사동 주민 김모(70)씨도 “제발 안 싸웠으면 좋겠다. 요즘 민주당이 ‘막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꼴보기 싫어진다”라며 혀를 찼다.
일부는 민주당 경선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주민 박모(여·27)씨는 “현역 의원이 민주당 소속인 것만 안다”며 “다른 후보는 누가 있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사동에 거주한다고 밝힌 20대 김모씨는 “민주당 경선에 누가 나오는지도 잘 모른다. 정치에 관심 없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정파 갈등으로 인해 다른 당이 어부지리로 승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산 사동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모(65)씨는 “안산이 옛날엔 ‘제2의 호남’이라고 불릴 정도로 민주당 성향이 강했는데 요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며 “이야기 하다보면 총선 표심이 딱 반으로 갈린다. 공천 파동 때문에 국민의힘으로 돌아선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