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엄벌 요구에도 가해자가 ‘기습공탁’해 형을 감면받는 등 공탁 제도의 취지를 벗어난 악용사례가 늘고 있다. 선고 직전 ‘기습공탁’을 하면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힐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난 2022년 12월 개정된 형사공탁 특례제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몰라도 공탁금을 걸 수 있도록 했다. 이 제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합의 없는 감면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기습공탁’을 막기 위해 피고인의 형사공탁을 검찰에 즉시 알리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피해자들이 대응하기는 시간적 여력이 부족하다. 공탁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공탁 회수 동의서를 작성해 법원을 방문하거나 우편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피해와 성범죄, 스토킹 사건 등은 피해자가 엄벌을 촉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22년 12월 청담동 인근 스쿨존에서 음주운전을 해 9살 초등학생 A군을 사망하게 한 가해자는 5억원을 ‘기습공탁’해 2심에서 2년을 감형받았다. A군의 부모는 공탁제도를 통해 가해자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했다고 호소했다.
또 강원도에서 초등학생 2명을 상대로 성매매를 제안하고 성관계를 한 남성 6명이 형사공탁으로 감면받았다. 피해자 부모는 엄벌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1년간 수십 차례 제출했지만 소용없었다. 피해자와 합의 없는 형사공탁으로 형량을 줄여 2차 가해가 발생한 셈이다.
김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피해자의 공탁 거부권 절차를 강화하기 위해 ‘공탁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변론 종결 20일 전까지 형사공탁이 가능해 ‘기습공탁’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제5조의2제1항에 ‘변론 종결 기일 20일 전’이라는 기간을 추가했다. 신설된 제4항에서는 공탁관은 법원과 검찰에 형사공탁 관련 내용을 통지하고 법원은 전화와 전자우편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나 법률대리인에게 그 내용을 알리도록 했다.
또 5항에서 법원이 4항에 따라 고지한 형사공탁을 변론 종결 기일 전에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피해자나 법률대리인의 의견을 청취하게 했다.
김 의원은 7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형사공탁의 취지에 맞지 않는 악용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합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탁이 이뤄지면 형량이 낮춰지는 경우가 발생해 ‘기습공탁’이 생겼다”며 “공탁할 수 있는 기간을 설정해 피해자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절차를 보장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개정안을 통해 공탁제도로 인한 2차 가해를 막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공탁으로 인해 피해자나 유족이 항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임현범 기자 limhb9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