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으로 지정됐어도 불법 주·정차가 계속되고 있어 보호구역의 지정 의미가 없어요.”
2006년 5월30일 쿠키뉴스 기사 중 일부다. 학생들의 교통안전을 위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 있지만 과속과 불법 주·정차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달 9일 충남 서산시 동문동 한 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3학년 학생이 15톤(t)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그해 5월까지 스쿨존 내에서 8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17년이 지난 현재 스쿨존 상황은 나아졌을까. 지난 4일 설레는 개학날이지만 학교 주변 스쿨존은 여전히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스쿨존 불법 주·정차는 물론, 도로가 통제되는 등·하교시간에도 차량 행렬이 이어지는 등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불법 주·정차 사이로 학교 가는 아이들
이날 오후 1시 서울 성북구의 A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이어진 통학로 중 일부는 안전봉이나 방호울타리가 없어 하교하는 아이들이 스쿨존에 주정차된 차량을 피해 걸어야 했다. ‘평일 오후 12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자동차 통행금지’라고 적힌 팻말 아래로 차량 몇 대가 지나갈 때마다 보호자의 손을 잡은 아이들은 멈춰 섰다.
서울 동대문구의 B초등학교 앞 이면도로에 주·정차된 차량 사이로 무거운 책가방을 멘 작은 체구의 학생이 주변을 살피며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학교 옆 언덕길은 등·하교 시간대인 오전 8~9시, 오후 12시30분~2시까지 차량 진입 금지 구역이다. 하지만 이날 오후 1시30분에도 차량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기자가 지켜본 30분 동안에만 20대가량이 해당 도로를 지나가 안전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동대문구의 C초등학교는 상사·공업사가 학교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는 차량이 많았다. 업무 때문에 스쿨존에 잠시 차를 세우는 경우도 많았다. 스쿨존 중 한 면만 방호울타리로 통학로를 확보했다. 이마저 정문 인근뿐이었다. 후문 바로 앞에는 방호 울타리가 없어 이면도로와 연결된 골목에 주차된 차량이 후진하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때마침 하교를 위해 후문으로 나온 학부모와 학생 바로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빠르게 지나갔다. ‘어린이 보호구역 30㎞’ 푯말이 무색하게만 느껴졌다.
동대문구청에 따르면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 및 차량 진입 금지 구역 관리는 경찰이 한다. 서울경찰청은 새학기를 맞아 지난 2일부터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법류 위반행위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특별단속 기간은 오는 4월30일까지다.
매년 ‘스쿨존 안전’ 외치지만…줄지 않는 사고율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학교·어린이집·유치원이 워낙 많아 모든 기관을 모두 순찰하긴 어렵다”며 “위험한 구간을 중심으로 순찰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쿨존을 맡을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인 셈이다.
때문에 지역사회 교통안전을 지키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절실하지만, 인력도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강기자 새마을교통봉사대 중앙대장이 교통 봉사 중 목격한 위험한 순간도 한둘이 아니다. 강 대장은 “학교 앞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 앞은 안 보고 휴대전화만 쳐다보며 지나가는 아이가 많다”며 “또 학교 바로 앞까지 아이 등하교를 시키는 학부모 차량도 도보로 학교를 오는 아이들에게 매우 위험하다”고 전했다.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 차주에게 이동해달라고 부탁해도 듣지 않아 너무 힘들어요. 제복이라도 입으면 상황은 낫지만, 자원봉사자들이 지원받기 힘든 게 현실이에요. 정부와 국회, 서울시·자치구도 스쿨존 문제와 교통봉사대의 필요성을 알고 있고, 어떻게 하겠다고(약속) 말하지만 지켜지지 않아 안타깝죠.”
관련 부처와 지자체들은 매년 어린이 교통안전 종합 대책을 펼치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2년) 스쿨존 내에서 2522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17명이 사망하고 2661명이 다쳤다. 지난 2022년 한해에만 514건(사망 3명·부상 529명) 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435건)과 비교하면 18.2%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경찰청 관할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는 77건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78명이 다쳤다.
과태료?…등하교 안전에 진짜 필요한 건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스쿨존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역사회의 협력과 성숙한 시민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정섭 서울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모든 지역과 순간들을 경찰이 살피기 어려운 만큼) 불법 주·정차, 통행금지 시간대 차량 진입 등 문제 발생 시 시민들의 참여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 계장은 “예컨대 교원, 학부모, 시민 등이 진입 금지 시간대 통제 구역을 지나가는 차량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안전앱에 신고하고, 채증되면 차주에게 과태료 처분이 나간다. 과태료를 내면 차량이 (문제를 인지하고) 해당 도로로 가지 않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협조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운전자가 교통안전 제도를 공감하고 수긍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부작용 없이 제도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제연구센터장은 “운전자 입장에서 ‘아이들이 걸어다는 시간에는 (스쿨존에) 주·정차가 안 됩니다’라고 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말이 된다. 반면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도 주·정차가 안 된다’고 하면 ‘엉터리 제도’라며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일시정지는 굉장히 강한 통제 수단”이라며 꼭 일시정지가 필요한 순간에 표식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률상 차도 없고 사람도 없어도 스쿨존 앞에 있는 횡단보도에서는 무조건 일시정지해야 한다. 이를 공감 못하는 이들은 학교 앞 횡당보도 마다 있는 일시정지 표식을 ‘원래 지키는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통안전 선진국인 스웨덴의 관련 교육책에 ‘운전자는 제도를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해야만 지킨다’는 글이 있습니다. 해외에선 한국의 쓰레기 분리수거 문화를 높이 평가합니다. 환경보호라는 논리적인 이유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부분이 행동하는 덕분입니다. 교통안전 제도도 마찬가지로 운전자가 상식적이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공감대를 이룬다면 제도 효과가 빛날 것 입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