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린다’는 80대에도 팔았다…ELS로 7천억원 챙긴 은행

‘안 들린다’는 80대에도 팔았다…ELS로 7천억원 챙긴 은행

홍콩H지수 ELS 판매잔액 18.8조원…누적 손실률 53.5%
판매 전사적으로 독려한 은행
대리가입·서류변조 등 불완전판매 드러나
DLF 보다 기본배상 ↓·투자자 고려요소 ↑
금감원 “판매사·투자자 책임 종합 반영”

기사승인 2024-03-11 10:05:11
지난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 증권사가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수익에 눈이 멀어 금융소비자 보호를 소홀히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중 은행이 2021년부터 2023년 3분기까지 ELS 판매 수수료를 통해 얻은 이익은 6815억원에 달한다.

판매사들은 주가지수 변동성이 커지는 시기, 오히려 홍콩H지수 ELS 영업 목표를 올렸다. 영업점에서는 “과거 10년 간 원금손실이 단 한번도 없었다”며 투자위험을 누락·왜곡해 설명했다.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는 87세 투자자에게는 “‘이해했다’고 답하라”고 재차 요청해 상품을 팔았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홍콩H지수 배상비율안은 판매사 요인(23~50%), 투자자별 개별 요인(±45%), 기타 조정요인(±10%)을 종합해 산출된다. 금감원은 4월부터 신속하게 대표사례에 대한 분조위를 개최하는 등 분쟁조정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위법부당행위에 대한 엄중 조치에 나서는 한편, ELS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를 다시 한번 들여다 보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판매잔액 18.8조원, 80% 올해 만기 도래…누적 손실률 53.5%

금감원은 11일 홍콩H지수 ELS 검사결과(잠정) 및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H지수 폭락으로 대규모 손실 발생이 우려되자 지난 1월8일부터 2달간 은행 5곳(국민, 신한, 하나, 농협, SC)과 증권사 6곳(한투, 미래, 삼성, KB, NH, 신한)을 대상으로 현장검사 및 민원조사를 벌였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홍콩H지수 ELS 판매잔액은 총 18조8000억원(39.6만 계좌)이다. 은행 판매 잔액이 81.9%(15.4조원)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증권은 3조4000억원이다. 투자자별로는 개인투자자가 압도적이다. 개인 17조3000억원(39만 계좌), 법인은 1조5000억원(0.5만 계좌)이였다.

개인투자자 중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는 8만4000 계좌(21.5%), 최초 투자자는 2만6000 계좌(6.7%)였다. 전체 잔액 80.5%인 15조1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중 도래하며, 분기별로 1분기 3조8000억원(20.4%), 2분기 6.0조원(32.1%) 등 상반기에 만기가 집중됐다.

이미 손실이 발생했다. 지난 1~2월 만기도래액 2조2000억원 중 총 손실금액은 1조2000억원으로 누적 손실률은 53.5%에 달한다. H지수가 지난달 말 지수(5678pt)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추가 예상 손실금액은 4조6000억원 수준이다.

금감원

고위험 상품이 “10년간 손실발생 0건”으로 둔갑

금감원 검사 결과 △판매정책·소비자보호 관리실태 부실 △판매시스템 차원의 불완전판매 △개별 판매과정에서의 다양한 불완전판매가 확인됐다.

판매사들은 성과지표를 부적절하게 설계해 전사적으로 홍콩 H지수 ELS 판매를 독려했다. 리스크 관리 기준도 변경했다. 일부 판매사가 투자자 성향분석 시 필수 확인항목을 누락하고, ‘손실감내수준 20% 미만’,․‘단기투자희망’ 등 고난도 장기위험상품에 부적합한 투자자에게 판매가 가능하도록 판매시스템을 설계한 경우가 발견됐다. 비예금상품위원회는 형식적으로 운영됐다.

A 은행은 H지수 변동성이 확대되던 2021년 1분기 중 두 차례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실적 데이터를 회사 게시판에 올리는 등 실적 경쟁을 종용했다. B은행은 ELT 등 고위험 특정금전신탁의 경우, 신탁수수료 최대 2배를 성과이익으로 평가해 고위험 상품 판매를 유도했다.

판매시스템 부실 문제도 드러났다. 위험상품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상품판매 기준을 임의조정한 사례가 확인됐다. 일부 금융사는 투자자 성향분석 시 필수 확인항목을 누락하고, 설명해야 할 손실위험 시나리오나 투자위험등급 유의사항 등을 빼먹거나 왜곡했다.

C 은행은 과거 20년으로 돼있는 손실위험 분석기간을 운용자산설명서에는 10년으로 임의변경,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것(0%)으로 축소 기재했다. 또 영업점에 배포한 안내자료(‘과거 10년간 손실발생 0건’) 및 권유멘트(‘과거 10년 동안 원금손실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검증된 상품입니다’)를 통해 안전상품으로 설명하도록 유도했다. D 은행은 금소법에 따라 금융소비자에게 설명해야 하고, 설명서의 맨 앞에 두도록 한 중요사항인 ‘위험등급 유의사항’을 아예 설명서에서 빼버렸다.

영업점 개별 판매과정에서도 적합성 원칙 및 설명의무 위반, 대리 가입, 고령자 보호 소홀, 서류 변조 등 다양한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 안정적 성향 투자자에게 투자성향을 상향하도록 유도하거나, 청력이 약한 고령투자자에게 상품내용을 ‘이해했다’고 답하도록 요청하고, 영업점 방문이 어렵다는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성향진단설문지, 상품가입신청서 등을 대리 작성․서명한 사례들이 드러났다.

금감원

판매자 요인·투자자 요인 비등…배상비율 투자자별 차이 클 듯

금감원 배상기준안을 살펴보면,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이 비슷한 비중으로 반영됐다. 판매사 요인(23~50%),  투자자 요인(±45%), 기타 조정요인(±10%p)을 종합 고려해 배상비율이 결정된다. 투자자별 배상비율 차이가 크게 날 것으로 보인다.

DLF 사례보다 기본배상은 낮아지고, 투자자별 가산차감 폭은 커졌다. DLF의 경우에는 기본배상 55%, 투자자별 고려요소 ±30% 였다. 금감원은 △ DLF 사태 등 과거 사례는 사모펀드지만, 이번에는 공모 형식으로 대중화·정형화돼 다수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됐고 △판매 투자자 연령대가 높고 조기상환이 가능한 상품 구조상 반복적으로 가입한 투자자가 다수라는 점 △ 장기간에 걸쳐 판매되며 판매시점에 따라 법규 규제적용시기가 상이하다는 점을 종합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판매사 요인은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등 판매원칙 위반 여부와 판매정책 및 소비자보호 관리체계 부실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 투자자 요인에는 판매사의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 보호 소홀, 투자자의 과거 ELS 투자경험 및 금융상품 이해도 등 판매사 및 투자자의 과실사유에 따라 배상비율이 가감되게 했다. 그 외 특수한 사정 등은 기타 조정요인으로 반영되게 설계했다. 

분조위, 자율배상 시작될 듯…“투자자 자기책임 원칙 훼손 않도록”

금감원은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대표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한다. 각 판매사는 금감원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율적으로 배상(사적화해)을 실시하게 된다.

금감원은 “검사결과 확인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할 것”이라며 “다만, 해당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검사 지적사항 시정 등 사후 수습 노력을 참작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재발방지에 초점을 두고, ELS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에 대한 제도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원리의 근간인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심사숙고했다”면서 금융사에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배상이 원활히 이루어져 법적 다툼의 장기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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