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전담조사관제 도입, 그래도 교사는 괴롭다

학폭 전담조사관제 도입, 그래도 교사는 괴롭다

기사승인 2024-03-12 11:00:10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교사노동조합연맹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가 학교 현장에 도입됐지만, 교사들이 여전히 학교폭력(학폭)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이 조사관 면담 일정까지 조정해야 하는 등 세부 업무가 늘어났고, 학폭 조사에도 동석해야 하는 등 제도의 본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20일 국무회의에서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의결돼 학폭 전담 조사관의 활동 근거가 명문화됐다고 밝혔다. 학폭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교를 방문해 조사하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이번 달부터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총 1955명 배치됐다. 조사관엔 생활지도나 수사·조사 경력이 있는 퇴직 경찰과 퇴직 교원 등이 위촉됐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은 불필요한 협박, 악성 민원 등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교사를 학교폭력 업무에서 배제해 교육과 생활지도에 집중하도록 하는 취지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전담경찰관 역할 강화 방안’ 브리핑에서 “교사들이 학폭 사안 조사를 하면 교육활동을 소홀히 할 수 있고 불필요한 갈등이 야기되기 때문에 이를 분리한 것”이라며 “전문가들이 (학폭 처리를) 맡으면 교사들은 교육적인 역할을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현장교사와 만난 자리에서 “학교폭력은 교육의 영역이 아니다. 경찰로 이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은 업무 부담이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학교폭력 업무까지 전담하진 않기 때문이다. 11일 초등교사 A씨는 쿠키뉴스에 “업무 배제는커녕 학교폭력 조사 관련 문서 작업까지 모두 교사의 몫이 됐다”이라며 “교사가 이젠 학폭 조사관 비서 역할까지 맡게 됐다”고 비판했다. 초등교사 B씨도 “조사 건당 수당도 받는 조사관을 위해 교사가 학생과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가 도입돼도 교사들이 학폭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발간한 ‘2024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엔 조사관의 사안 조사 시 교원은 사안 조사 준비를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조사관 사안 조사 시 학교의 역할’에 조사관의 사안 조사 준비 지원, 교원의 협력(동석 등), 장소 제공, 증빙자료 관리, 조사관에게 사본 및 스캔본 제공 등 8개 사항의 행정업무 수행을 교사가 담당해야 한다고 적었다.

교사들도 제도 도입 전부터 오히려 업무가 늘어날 거라고 우려했다. 교사노동조합 연맹이 지난달 20~22일 교사 1만432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78%가 ‘학폭 전담조사관제 시행 이후 교사가 조사 일정을 조율하고 조사에 동석한다면 업무가 늘어날 것’이라 답했다. 업무가 줄어들 것이라 응답한 교사는 2.8%에 불과했다.

교사가 학교폭력 조사에 동석하는 점도 문제다. 조사 결과에 따라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사가 학폭 조사에 동석한다는 건 함께 조사에 임한다는 의미”라며 “학부모가 불리하게 조사됐다고 판단하면, 또 다른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도 학폭 조사에 대해 불복할 경우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일이 많아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교사노조에 설문 조사에 따르면, 92.5%가 ‘학교폭력 조사 동석 시 교사에 대한 민원이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가 도입돼도 교사들이 학폭 조사에 동석해야 한다는 방침이 나오고 있다. 11일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9개 교육청 중 제주교육청을 제외한 서울, 대구, 인천, 광주, 울산, 경북, 전북, 충북 등 8개 교육청은 교사 동석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사 동석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밝혔고, 이외 교육청들은 “학교장 필요 판단 시 동석”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교사들과 교원단체는 학교폭력 조사 업무를 교육청으로 완전히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서 교사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교사노동조합연맹 기자회견에서 “교사에게 조사관의 조사 일정 조율과 조사 시 동석을 요구하는 학교폭력전담조사관제는 본말이 전도된 정책”이라며 “조사 업무를 교육청으로 완전히 이관하는 조건으로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민재 중등교사는 “학교·교사가 악성 민원에서 벗어나 교육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조사 시 교사 동석 추진’을 멈추고 ‘학교폭력조사업무 교육청 완전 이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을 교육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 해결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도 제기됐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조사관 조사 시 학부모는 아이가 혼자 조사받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학폭 사안은 훨씬 민감해지고 사법 절차로 이기냐, 지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 우려했다. 이어 “사법 다툼으로 번질 경우, 학폭 사안에 변호사도 끼게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교사도 필요해 결국 교사의 업무는 줄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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