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악화일로’ 한달…해결 실마리는

의료공백 ‘악화일로’ 한달…해결 실마리는

기사승인 2024-03-20 06:00:36
의사 집단행동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2000명 확대 추진에 반발해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지 한 달. 여전히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자들의 의사면허가 정지되고 유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대 교수들은 오는 25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의료공백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하고 환자 불편은 쌓여만 가는 상황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의·정 갈등 ‘평행선’…“이대로면 의료체계 무너져”

20일 의사 집단행동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모두 ‘대화하자’면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19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정례브리핑에서 “의료계에서 대표성 있는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제안한다면 정부는 언제든 이에 응할 것”이라며 “의료계에 협의체를 구성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벌써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구성이 되지 않고 있고, 정부에 대한 통일된 요구사항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000명 증원안은 비합리적·비과학적”이라며 ‘전면 백지화’로 맞서고 있다. 이날 의협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이 사태를 초래한 잘못에 대해 국민 앞에 솔직히 사과하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주기 바란다”면서 “만일 정부가 지금처럼 일방적인 태도로 현 정책을 고집한다면 다가올 파국과 의료 붕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 모두 물러섬 없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국민의 피로감과 환자 피해는 쌓여간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 지원센터’에 1414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509건의 환자 피해사례 중 수술 지연이 350건으로 가장 많았다. 병원들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월 첫 주와 비교해 3월 첫 주 상급종합병원의 일평균 입원 환자는 36.5% 감소했다. 대부분의 병원이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고, 간호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무급휴가를 실시하는 곳도 생겼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대로라면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병원들이 속출하고, 위태로운 의료체계는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이후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20개 대학이 모인 전국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교수들은 오는 25일부터 대학별로 사직서를 내기로 결정했다. 서울의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교수들도 단체행동을 결의했다. 방재승 전국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사태가 4월로 넘어가면 의대생 유급, 전공의 행정처분, 대형병원 줄도산이 이어지고 의료체계는 무너진다”고 우려했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으로 인해 국민의 피로감과 환자의 불편이 쌓여간다. 일부 의료계와 전문가들은 의·정 간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임형택 기자


의·정 한발씩 물러나 ‘접점’ 찾아야

일부 의료계와 전문가들은 ‘최악의 의료대란만은 막아야 한다’며 의·정 간 ‘접점’을 찾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와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두고 한발씩 물러선 상태에서 정부는 의료계에 잘못된 의료제도를 완벽히 개혁하겠다는 확신을 주고, 의료계는 전공의와 의대생을 아우르며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앞서 정부가 오는 2035년 의사 수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을 때 참고한 연구보고서들의 저자들은 점진적 증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지난 7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의사 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홍윤철 서울의대 교수는 “연구보고서 결론 부분에 합리적 정원 수는 500~1000명 수준이라고 정의했다”고 짚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위원도 “1만명을 증원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면 2035년까지 매해 1000명씩 늘리면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매해 5~7%씩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식을 제시했다. 첫해에 기존 의대 정원 3058명에 5%를 더한 153명, 그 다음 해에 늘어난 정원 3211명에서 5% 증원한 160명을 늘리는 식이다.

정부가 단기적으로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중장기적으론 이들이 필수의료에 종사할 수 있도록 계속 독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 주도 하에서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압박하는 정책만 밀어붙여서는 의료개혁이 되지 않는다. 떼돈을 벌진 못해도 환자 진료와 수술을 하면서 워라벨을 챙기고 동시에 가족들에게 환영받는 의사가 될 수 있게 하겠단 확신을 주는 게 필요하다”며 “정부는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필수의료를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하겠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5년 동안 2000명을 증원한다고만 했지 어떻게 인력을 양성하겠단 구체적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며 체감 가능한 가시적 정책 제시가 먼저라고 했다. 정 교수는 “의대 증원 정책은 의료개혁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2000명 규모에 완고한 정부가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대화의 물꼬를 트는 선결조건”이라고 했다. 이어 “현 증원 규모는 너무 크다”며 “중간선을 찾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의협, 전공의 등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뇌혈관 치료에 종사하는 의사단체인 대한뇌혈관외과학회와 대한뇌혈관내치료의학회는 성명을 내고 “정부는 이번 의료 정책으로 야기된 혼란에 일차적 책임을 지고 당사자와의 합의를 통해 정책의 모든 부분을 상의할 수 있음을 인정하라”며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가 성실한 자세로 협의를 제안하면 책임감을 갖고 응하라”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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