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은 막자”…의대 증원 ‘대척’ 실마리는

“파국은 막자”…의대 증원 ‘대척’ 실마리는

기사승인 2024-03-26 11:00:06
의사 집단행동이 한 달을 넘은 가운데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이어지고 환자 불편은 쌓여간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2000명 확대 추진에 반발해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요원하다. 전공의 면허정지 조치에 대해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정부는 ‘유연한 처리’로 입장을 선회했지만, 증원 규모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양쪽의 극적인 태도 변화를 바라는 요구가 커진다.

26일 의사 집단행동이 한 달을 넘었지만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이어지고 환자 불편은 쌓여간다. 전국 의대 교수들까지 나서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외래진료를 축소하는 등 예고대로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해 진료 차질을 우려하는 환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25일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암 환자들의 조혈모세포 이식술과 항암치료 일정이 연기되고, 백혈병·혈액암 환자의 골수검사와 심장질환 환자의 수술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항암치료가 2주 정도 미뤄진 사이 암이 재발했단 피해 등도 접수됐다. 연합회는 “응급 수술이나 처치가 필요한 환자, 적시에 항암치료·방사선치료·장기이식·조혈모세포이식 등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경우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며 “초유의 강 대 강 대치에 더는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희생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 침대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의대 교수 사직 본격화…수술·진료 축소

환자 피해는 늘어만 가는데 의·정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될지는 미지수다.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대화하자’면서도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대 2000명 증원을 철회하지 않고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단 강경한 입장이며, 의료계는 정부의 증원 방침에 변화가 없다면 건설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단 생각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5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정부는 관계 부처가 협의해 의료계와의 대화를 위한 실무 작업에 즉시 착수했다. 빠른 시간 내에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의료 공백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의 행정처분에 대한 유연한 처리 방안을 당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조 장관의 발언은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고,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 달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세브란스병원에서 39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단과 50분가량 비공개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주문은 면허정지 처분 유예로 일단 전공의들에게 복귀의 문을 열어주고, 이를 빌미로 의료계와 실무적 대화에 나서 의·정 갈등을 봉합하겠단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의료계가 정부의 손을 잡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아 보인다.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교수들이 포함된 전의교협은 25일부터 사직서 제출과 함께 진료를 축소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자발적 사직서 제출과 함께 수술과 진료 시간을 주 52시간 이내로 줄이고, 다음달 1일부터는 외래진료도 최소화해 중증·응급환자 치료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25일 연세대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정부가 밝힌 협의체 구성이나 전공의 처벌 유예 부분은 과거보단 진일보한 제안이지만, 제안의 구체성이나 다뤄야 되는 내용 등이 자세히 정리되지 않았단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의가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교수들이 외래 진료나 입원, 중환자 진료를 전담하며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고 정신적인 고통도 상당히 큰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의사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환자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사직서가 수리되기까지 한 달이 소요되는데, 그전에 이 사태가 해결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기자회견을 마친 후 요구안이 든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의·정, 증원 규모 한발씩 물러서야”

한 치의 양보 없이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자 의·정 간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의료계와 정치권 모두에서 터져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두고 한발씩 물러서야 이 사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 교육에 정통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는 의대 증원 여부와 수, 방법과 시기 등 모든 내용을 포함해 의료계와 논의하고, 전공의 처벌을 중단하겠단 약속을 해줘야 된다”며 “의료계는 정부의 약속이 확인되면 증원 결사반대가 아닌 전체적인 주제를 수용해 논의에 참석하고, 전공의들이 복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의대 증원이 불가피하다면 현재 의대 교육여건을 고려해 적은 수의 규모를 단계적으로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현재 의대들은 내년에 2000명 증원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는다”며 “교육 시설·설비 확충 등 의대들이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주고 천천히 단계적으로 증원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는 이상 의료계와 타협이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신 의원은 “한동훈 위원장이 의료계와 만나고,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예하는 등의 당근책 갖곤 사태 해결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의사들 분노만 키우는 꼴”이라며 “이 사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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