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임대인, 수습은 임차인 몫” 홀로 싸우는 전세사기 피해자

“사기는 임대인, 수습은 임차인 몫” 홀로 싸우는 전세사기 피해자

기사승인 2024-04-01 06:05:01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24일 서울 종로 보신각 일대에서 ‘전세사기피해자 1주기 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민달팽이 유니온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지난해 2월28일 사망한 전세 사기 희생자가 남긴 말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전세 사기 피해로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세 사기로 인한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부 악성 임대인들은 전세 사기 후 사망해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사례마저 발생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사기 피해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전세 사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평가된다. 법의 사각지대 안에서 대규모 전세 사기 문제를 키웠기 때문이다. 개인 1인이 수백 채의 집을 무자본 갭 투기 방식으로 소유하는데 그 어떠한 제재도 발동하지 않았다. 대규모 전세 사기에 가담한 임대인들이 수백 채의 주택 보증보험을 발급했음에도 보증금 반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관리‧감독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심의‧의결한 전세 사기 피해는 누적 1만4000건을 넘어섰다. 지난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1428건을 심의하고 1073건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신청을 하지 않은 임차인들도 다수 있어 누적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임대인, 공인중개사, 은행, 법원, 국가 모두 책임을 회피해 오롯이 피해자들이 모든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창식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 부위원장은 지난 2월24일 전세 사기 피해자 1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해 “피해자들은 강제퇴거로 길거리에 나앉고 개인회생으로 살아가는 사연이 쌓이고 있다”라며 “피해자 인정을 마치 구제받은 것처럼 홍보하지만 실상 전세대출금을 무이자 20년 상환하란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임대인이 가지고 있는 전세보증금을 왜 피해자들이 무이자 대출을 추가로 받아 상환해야 하냐”라고 반문했다.

석진미 경산 전세사기대책위 공동위원장도 같은 날 “다가구주택에 실소유자는 바지 임대인을 앞세워 건물 7채를 소유했으나 경매에 넘어갈 상황에 놓였다”라며 “대출금 부담감에 부업을 통해 일을 하고 있으나 바지 임대인과 실소유자는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24일 서울 종로 보신각 일대에서 ‘전세사기피해자 1주기 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민달팽이 유니온

이 같은 전세 사기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는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13년 HUG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가입실적이 451건, 756억원 규모였으나 지난해 1~9월 31만4456건, 71조원 규모로 1000배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세 시장의 불안성이 전세보증금 반환보험 가입 폭증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대인들의 전세보증금 반환보험 가입도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책임을 임차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 부장은 “전세 계약을 통해 이익을 받는 사람은 임대인이며 전세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위험 부담도 온전히 임대인에게 발생한다”면서 “보증금을 돌려받는 주체가 임차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차인이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불합리하다”라고 꼬집었다.

전세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임대인의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 부장은 “임대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임대보증금보증 상품을 살펴보면, 2020~2023년 9월까지 기준 대위변제는 0.7%로 전세 반환보증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대위변제란 보증금 미반환으로 인해 채무자가 아닌 다른 사람(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채무를 대신 변제한 것으로, 낮은 대위변제율은 임대인들이 보증보험 가입 시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더 적은 것을 의미한다.
 
임대인의 임대보증금보증 가입 시 임대인의 자격 검증을 통해 전세 사기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부장은 “임대보증금보증 가입 때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려면 기본적으로 그 등록 과정에서 상당 부분의 (전세 사기를 목적으로 한) 임대인들이 걸러지는 효과가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 제도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깡통전세 등의 문제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임대인이 의무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전세 피해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전세 사기에 가담한 임대인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현재 전세 계약 시스템을 보면 사기를 치기 쉬운데 처벌은 약하다”라며 “양심만 버리면 돈을 쉽게 벌 수 있으니 사기범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라 꼬집었다. 그는 “일단 처벌을 강화해야 하고 전세 사기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적인 개선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국세청과 국가기관이 연계해서 전세 계약 시 임대인들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전세가율이 높으면 경고문이 뜨는 등 계약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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