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가 모호한 ‘댓글부대’에 이끌린 순간 [쿠키인터뷰]

손석구가 모호한 ‘댓글부대’에 이끌린 순간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4-03-30 15:00:02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댓글부대’(감독 안국진) 속 한 장면. “100%의 거짓말보다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이 더 효과적”이라는 한 제보자의 말에 해직 기자 임상진(손석구)은 코웃음 친다. 그 말을 하는 대상이 영 마뜩잖아서다. 자신과 친구들이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는 이른바 댓글부대라는 말을 반신반의하던 임상진은 일련의 사건을 거쳐 그 실체를 믿게 된다. 그가 믿은 건 과연 진실일까, 거짓일까. 영화는 끝까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지난 22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손석구는 “이 같은 모호함이 우리 영화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명확한 결말을 추구하는 기존 상업영화 해법에 반기를 드는 작품이다. 손석구의 말처럼 ‘댓글부대’는 모호하다. 그가 연기한 임상진이 상대하는 세력은 드러난 바가 전혀 없다. 그들이 실재하는지, 집단이 맞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임상진의 보도가 덧칠당한 진실인지, 처음부터 거짓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손석구는 “본 사람이 느낀 그대로가 그 사람만의 엔딩”이라며 “사실 여부를 알려주지 않는 게 ‘댓글부대’의 주제”라고 설명했다. 손석구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이 같은 방향성에서 현실감을 읽었다.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댓글부대’로 이끌었다.

안국진 감독에 관한 호기심 역시 컸다. 감독 전작 ‘성실한 나라의 엘리스’는 독특한 색채로 당시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꼬집어 호평을 모았다. 이번 작품 역시 독창적인 연출력을 토대로 현실과 허구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관객을 절로 몰입시킨 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출연 결정 후 동명 원작 소설을 읽어봤다는 손석구는 “작품 주제를 원작과 동일하게” 가져간 데서 감독의 영민함을 느꼈다. 사회비판을 담은 원작 메시지가 지금 현실에도 유효하다는 점에서는 감탄이 나왔단다.

배우 손석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작품은 손석구의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팀알렙 멤버들이 여론을 쥐락펴락한 과정을 네 가지 에피소드로 차근차근 보여준다. 손석구는 제 역할을 전채요리(애피타이저)에 비유했다. “입맛을 돌게 한 뒤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고 예고한 다음 식당에서 나갈 때 잘 가라는 인사를 해주는 정도죠. 그 사이를 채우는 건 팀알렙이어야 했어요. 일부러라도 자아를 넣지 않으려 했어요.” 캐릭터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조합한 말)가 좋다고도 부연했다. “이번 작품에선 딱 이 만큼을 노렸어요. 안국진 감독이라는 예술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작업인 만큼 배우로서 캐릭터를 표현하겠다는 욕심을 내진 않았거든요. 잠깐 나와도 관객에 각인되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아요. 하하.”

손석구는 “먼 미래나 과거가 아닌 현시점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작업”에 늘 매력을 느낀다. “개인적이면서도 시의성을 놓치지 않는 영화에 일조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다. ‘댓글부대’에는 “대중성과 상업성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봤다. 손석구는 “영화산업이 정체기에 놓이지 않으려면 재미 외에도 사회적 기능을 담는 작품이 생겨나야 한다”면서 “이런 영화가 한국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댓글부대’는 우리네 삶과 결이 같아요. 우리 모두 온라인 여론전을 두고 각자 생각을 갖고 있지만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잖아요. 사실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면서요. 상업영화 문법과 괴리가 있더라도, 제 이야기처럼 느낀 관객이 있다면 그걸로 이 작품은 역할을 다한 거죠. 결말을 단정했다면 오히려 매력적이지 않았을 거예요. 개개인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어 좋았어요. 정답이 있고 없고의 모호함이 아닌, 나만의 정답이 통용될 수는 없다는 것. 그런 점에서 웃기다가도 무서운 영화죠. 내 얘기라고 생각하며 본 뒤, 결말에서 제각기 다른 감정을 느껴주세요. 그게 ‘댓글부대’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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