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졸업하고 N수해서 의대… ‘의대 블랙홀’ 대책 없나

과학고 졸업하고 N수해서 의대… ‘의대 블랙홀’ 대책 없나

기사승인 2024-04-09 11:00:02
지난달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전경. 사진=임형택 기자

의대로 이공계 인재들이 몰리는 ‘의대 블랙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의대 증원 이슈로 의대 선호가 더 커질 가운데 이공계특성화고 졸업생의 의대 진학을 막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영재고와 과학고 교육과정 내에서 이공계열 진학 연계를 유도하고 있으나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제재는 어렵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학년도 서울대 의대 정시에 영재학교와 과학고 출신 비율이 25%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빅4의대(서울대·연세대·카톨릭대·울산대) 합격생 중 영재고·과고 출신 비율은 13.6%로 집계됐다. 전체 인원 대비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으나, 이공계특성화고를 졸업하고도 의대를 진학하는 것은 의대로 이공계 인재 유출이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의대증원으로 인해 이공계특성화고 학생들이 졸업 후 의대 진학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고교 재학 중엔 의대 진학에 제재를 가할 수 있으나, 졸업 후 N수생 신분으로는 패널티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공계특성화고인 영재학교와 과학고등학교는 영재교육법에 따라 과학·기술 등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학교다. 이에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장학금과 교육비 등은 모두 국비로 지원한다. 

그러나 설립 취지와 다르게 이공계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의대 진학의 디딤돌로 삼는 경우가 많아지자 비판이 커졌다. 이에 2022년 입학생부터 의대나 약대로 진학할 경우 장학금과 교육비 등을 환수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고교 재학 중 의대에 지원할 경우 학교생활기록부 창의체험활동을 공란으로 기재하는 등 불이익을 강화했다. 그러나 재수나 반수를 통해 정시로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 별다른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 사진=곽경근 대기자

이공계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이공계열과 의약계열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처우나 향후 소득 등을 고려할 때 의약계열 진학이 장학금 환수 등 불이익을 감수해도 될 만큼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과학고를 졸업한 후 올해 과학기술원에 입학한 이모(18)씨는 “이공계열 졸업 후 사회적 지위나 평판 소득 등을 생각해보면 의대보다 처우가 안 좋은 건 사실이지 않느냐”며 “과학고 출신이라면 노후 보장 및 전망이 밝은 의대 진학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장학금 환수 등 학교 측의 제재가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씨는 “장학금 환수는 돌려주면 그만”이라며 “의사가 되면 그보다 더 큰 수입을 얻을 것이기에 딱히 실효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에만 쏠리는 현상을 막고 이공계 인재를 충분히 양성하기 위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공계특성화고 졸업생들이 고교졸업 후 의대 진학을 제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교육부의 의견이다.

교육부 학교교수학습혁신과 관계자는 “교육부는 고등학교까지 담당한다”며 “재학생들이 의약계열 진학 시 장학금 환수 및 학교생활기록부 불이익 방안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나 졸업생에 대해 제한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거나 살다보면 진로가 바뀔 수도 있지 않느냐”며 “졸업 이후에 대한 제재는 법적으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졸업생 추적조사 및 교과과정 내 연계 등으로 이공계 인재 양성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관계자는 “졸업생 추적조사를 통해 왜 졸업 후에 이공계열로 가지 않고 의약계열로 가는지 조사하고 분석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교육과정 내에서도 이공계 인재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유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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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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