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표대결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75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의 고려아연과 영풍의 결별 수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9일 보도자료를 내고 “영풍과 아연 등 주요 품목에 대해 원료 구매와 제품 판매 과정에서 공동계약을 체결해왔으나 계약 만료에 맞춰 이를 종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십 년 전부터 고려아연과 영풍은 20여 건의 공동구매·공동판매 계약에 대해 1~2년 단위로 갱신을 해왔지만, 고려아연은 올해 10여 건과 내년·후년 총 10여 건 등 만기가 도래하는 모든 계약에 대해 순차적으로 계약을 종료할 방침이다.
고려아연은 최근 경기침체로 비철금속 시장에서 원료 수급과 제품 판매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경영환경 악화로 부담이 커지고 있어 실적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위해 개별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안전 리스크로 조업 차질과 생산량 감소가 현실화되고 있고, 원료 구매의 불확실성으로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영상 이유를 들었지만 업계에선 고려아연이 영풍과 완전히 갈라설 계획을 순차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회사다. 현재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맡아 75년간 동업을 이어 왔다.
그러다 지난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취임 이후 최 회장 일가와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 일가 간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졌고, 올해 주총에서 배당 정책과 정관 변경에 대한 표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주총 직후 고려아연은 영풍과 함께 비철금속 제품을 유통하는 계열사 서린상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이사를 선임하려 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임시 이사회를 열지 못하면서 일단 불발됐다. 서린상사는 고려아연이 지분 66.7%를 보유해 최대주주이지만, 그동안 경영권은 지분 33.3%를 보유한 영풍에서 행사해 왔다.
이와 더불어 고려아연은 올 하반기 영풍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을 떠나 종로 그랑서울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1980년 입주한지 44년 만에 둥지를 옮기게 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신사업 확장으로 인한 인원 증가라는 원인을 밝혔지만, 업계에선 이 역시 영풍과의 갈등이 주요 영향이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양사의 공동구매·공동판매 계약 중단에 따라 국내 업계에 닿는 영향도 한동안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의 총 아연 수요 42만톤 중 고려아연과 영풍은 총 39만톤을 공급해 왔다. 양사의 전 세계 아연 시장 점유율도 9%에 달한다. 양사의 동업 관계가 끝나면 양사와 거래를 하던 국내 업체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원자재 시장의 거래관계도 재설정돼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강동완 고려아연 부사장은 지난 3일(현지시각) 로이터를 통해 “한국의 생산량이 급감할 경우 수출보다 내수 판매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