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 된 택시운전사의 현수막 이야기 [쿠키인터뷰]

환경운동가 된 택시운전사의 현수막 이야기 [쿠키인터뷰]

김순철 폐현수막 업사이클링기업 ‘녹색발전소’ 대표
에코백, 지자체 벤치마킹 현수막 재활용
“버려지지 않고 다시 쓰였으면...정부·지자체·기업 마인드 바뀌길”

기사승인 2024-04-20 16:00:02
17일 녹색발전소 김순철 대표가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폐’현수막이라는 단어가 현수막 재사용 제품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버려진 현수막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재활용된 장바구니, 마대 등 품질은 높고 튼튼합니다.”

폐현수막 업사이클링기업 ‘녹색발전소’ 대표 김순철 씨는 지난 17일 경기 파주시 녹색발전소에서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20여년간 이어온, 소위 ‘돈 되지 않는 사업’인 현수막 재활용에 관한 소회를 밝혔다. 지난 2004년 처음 현수막을 재활용한 시장가방(에코백)이 세상에 나오고 지자체들은 이를 벤치마킹해 현수막을 재활용하기 시작했다. 현수막 시장가방은 이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작품이다.

녹색발전소는 환경단체로 시작해 2004년부터 버려진 현수막 재활용 활동을 해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은 현수막으로 장바구니, 어린이집·유치원 재활용 교육 활동 도구, 마대, 모래주머니 등 재활용품을 만들어 지자체와 공공기관, 기업, 개인 등에 납품하고 수출도 한다. 지자체의 골칫거리 현수막이 누군가의 짐을 대신 담아주는 장바구니로, 학생들의 보조가방으로 새 삶을 얻은 것이다.

녹색발전소에서 가방으로 재탄생한 현수막. 사진=임지혜 기자

처음부터 현수막 재활용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김 대표는 지난 1993년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한 환경활동가다. 젊은 시절 택시운전사였던 그는 본래 개인택시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서울시에서 최연소 개인택시면허를 얻자 본인 역시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

“지금의 안양천은 정말 아름답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악취가 진동했어요. 물이 썩어 버스를 타고 성산대교 근방을 지나갈 때면 코를 잡아야 할 정도였죠. 당시는 환경에 대한 개념이 지금처럼 높지 않아 하천에 쓰레기, 폐수를 버리는 게 일상이였을 때였어요. 어느 날 오리 한 마리가 안양천에 잘못 앉았다가 기름때에 범벅이 돼 날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너희(동물)에게 깨끗한 하천을 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안양천 살리기’가 환경활동가가 된 계기였죠.”

1993년, 안양천 살리기에 뜻이 맞은 개인택시들을 모집했다. 당시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단체도 수소문 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강서지회소속 지회장을 맡은 김 대표는 다른 택시기사들과 함께 쉬는 날이면 안양천으로 달려가 폐유를 걷어내고 쓰레기를 주었다. 기동력을 갖춘 택시기사들은 ‘환경통신원’이 돼 각 지역으로 이동, 환경 활동을 도우며 규모를 늘렸다. 그로부터 8년 뒤, 2001년 7월20일 국민일보 ‘환경지침이 택시기사들의 힘…검은 死川 안양천이 살아난다’ 제하의 기사는 쓰레기, 생활하수, 폐유로 넘쳐 한때 죽은 강이라 불렸던 안양천이 환경운동에 나선 400여명의 ‘안양천 지킴이’ 택시기사들 덕분에 최근 살아나고 있다고 조명했다.

김씨는 “처음 안양천 살리기를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 사람이 ‘그게 되겠어?’라고 의심했다”며 “관련 내용이 뉴스로 보도되고, 환경 심각성이 조명되면서 정부, 기업, 군대, 시민단체 등 사회가 하나가 돼 돕기 시작했다. 결과가 지금의 안양천이다. 옛날엔 사람 한 명 찾기 어려웠지만, 이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안양천을 보면 여전히 울컥한다”고 말했다. 한때 하천 5급수였던 안양천은 현재 1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17일 경기 파주시에 있는 녹색발전소에 보관된 현수막을 김순철 대표가 돌아보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현수막 재활용 아이디어도 생활 속에서 나왔다. 김 대표는 “우연히 걷다가 동네 큰 창고 앞에서 아주머니들이 뭔가를 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 창고 안에는 현수막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소각하기 위해 현수막을 손질하고 있던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현수막을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전부 태울까’ 생각했던 것이 가방, 모래 마대 등을 만들어 재사용하는 방법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를 위해 민간 기업에 의뢰해 안전성 검사를 받고 유해성이 없다는 결과도 받았다.

실망하는 순간도 많다. 현수막 공해를 줄이기 위해 재활용·재사용하는 방안을 정부, 지자체, 기업 등에 제시했지만 관심은 잠깐이었다. 고된 수작업이지만,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는 환경 운동 특성상 운영이 쉽지 않다. 포기하고 싶을 때 손을 다시 잡아 준 건 가족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환경운동을 보며 자란 딸은, 또 다른 환경활동가가 돼 녹색발전소를 함께 이끌어가고 있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현수막은 모두 재활용·재사용이 가능하다. 현수막 원단은 가방, 마대, 모래주머니로 만들고, 노끈은 녹여 플라스틱 제품 원료로 재활용된다. 나무 막대기는 현수막 제조 공장으로 돌아가 재사용된다. 따라서 각 지자체, 기업에서 버려진 현수막에 대한 관리와 보관이 전제돼야 한다.

“소망이 있다면 첫 번째는 ‘현수막이 하나도 버려지지 않고, 소각되지 않고 다시 쓰였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정부와 지자체, 기업, 개인의 마인드가 바뀌길 바라는 거예요. 각 지역과 기업에서 어차피 폐기해야 할 쓰레기를 모으는 마대, 모래주머니 등을 현수막으로 만들면 예산도 적게 들고 많은 양을 재활용할 수 있거든요. 또 이왕 장바구니, 보조가방을 구매한다면, 재활용 현수막 제품을 선택하길 바라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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