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나고 곪아 터진 ‘한국 의료’…“치료책은 정부 결단”

상처 나고 곪아 터진 ‘한국 의료’…“치료책은 정부 결단”

기사승인 2024-04-30 17:20:05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제일제당홀에서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주제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의 긴급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사진=박효상 기자

의대생도, 전공의도, 교수도, 환자도 그리고 국민들도 모두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추진으로 촉발된 의료대란 상황에 지쳐간다. 상처 나고 곪아 터진 한국 의료를 치료하기 위해 정부가 완전히 물러서서 의료계와의 갈등 봉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과 당부가 쏟아진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주제로 30일 개최한 심포지엄은 의대생, 전공의, 교수, 환자 등 각 직역이 모여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을 비판하는 성토장이었다.

의대생들은 정부가 학생들의 의견에 귀를 닫고 있다고 했다. 명확한 교육 여건 강화 방안을 내놓지 않은 채 정부의 설익은 정책이 의대생들의 수업 참여 의지를 떨어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민호 서울의대 학생 대표는 “정부의 왜곡된 정보 전달로 소통의 거버넌스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며 “휴학계 비율을 축소해 발표하거나 학생들의 휴학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며 우리 학생들은 정부의 행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수식어로 위선과 독선 그리고 오만함을 꼽는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의대생들의 의견 수렴이 없었던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증원 규모가 발표되기 전 보건복지부와 의대 학생대표 40명과의 간담회가 1월13일에 예정돼 있었는데 복지부의 일방적인 통보로 27일로 연기되고 이마저도 결국 취소됐다.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은 필수의료에 대한 학생들의 마음을 멀어지게 했다. 김 대표는 “정부는 정책 추진 명분과 구색을 갖추기 위해 필수의료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해 마치 비필수의료가 있는 것인양 의학이라는 학문을 곡해했다”며 “정부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를 그저 낙수과로 대하는 태도 때문에 학생들의 해당 임상과에 대한 선호도는 크게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태를 정부가 시작했으니 끝도 정부가 내야 한다”며 “정부가 정말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을 때 끝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이제라도 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의료개혁을 위해서 전공의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환자 곁에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박 대표는 “정부는 불통과 독선으로 의료계와의 신뢰관계를 망가뜨리고 있고, 언론을 통해 전공의를 악마화하면서 국민과의 신뢰까지 깨버리고 있다”며 “정부는 회복한 환자의 감사 인사와 편지를 평생 마음 속에 품으면서 사는 젊은 의사의 현장을 봤나”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번 정책을 수립할 때 교육의 질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고 정책을 발표했다”며 “전공의들이 몸을 기댈 곳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기피과가 있다면 시스템을 개선해서 모든 전공의가 소신껏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교수들은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웅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만 할 뿐 이들 2000명이 지역·필수의료를 담당하리라는 가설에 대한 근거는 부족하다”며 “비과학을 과학으로 포장해 진리인 것처럼 거짓말하는 건 과거 ‘황우석 사태’를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다. 황우석 사태는 2000년대 초 줄기세포 연구로 각광받던 황우석 박사가 언론 보도로 논문을 조작한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강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의사만 사회주의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가”라며 “정부의 포퓰리즘에 국민이 속고 있다. 국민들은 의대 2000명 증원 시 건강보험료가 크게 오를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재승 서울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던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단 두 달 만에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무너졌다고 직격했다. 방 위원장은 “의료시스템 유지엔 수많은 의료인의 희생이 있었지만, 그런 의료인의 희생과 자긍심을 정부는 단번에 짓밟았다”며 “의사집단은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됐다. 정부는 진실된 마음으로 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화되는 의료대란 사태에 환자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회장은 더 이상 의정 갈등에 환자들이 피해 입지 않도록 하루빨리 사태가 해결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안 회장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환자가 불안해하고 있다. 이들은 그저 의정 갈등에 환자가 생명을 잃지 않길 바랄 뿐”이라며 “다양한 의료단체와 환자단체, 정부의 소통 창구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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