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이 임박한 ‘진료 시 신분증 제출 및 확인 제도(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를 둘러싸고 의료계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대국민 홍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일선 의료기관에 정부 차원의 안내나 지침이 내려진 게 없어 제도 시행 초기 혼란이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20일부터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제시해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외국인의 경우 사진과 외국인 등록번호가 포함된 증명서를 제출하면 된다. 19세 미만이거나 응급상황에 놓인 환자, 또 진료받는 병원에서 6개월 내 본인 여부를 확인한 적이 있는 환자 등은 예외적으로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신분증이 없으면 온라인에서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내려받아 인증하면 된다.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는 건강보험증을 대여하거나 도용해 진료를 받는 부정수급 사례를 예방하고자 마련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증 대여·도용 적발 사례는 2021년 3만2605건, 2022년 3만771건, 2023년 4만418건에 달한다.
국민들은 제도 시행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다. 경기 의정부에 거주하는 김규현(29)씨는 “병원에 가면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고 작은 종이에 개인 신상정보를 적게 했는데 이러면 타인의 신분을 도용해 진료받는 게 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 적이 있다”며 “번거롭겠지만 신분증을 제시하고 진료받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분증은 도용되거나 위조할 위험이 있으니 아예 지문인식 방식으로 건보 자격 여부를 인증하자는 의견도 있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박재은(37)씨는 “건보 부정수급 방지가 목적이라면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문은 신분증처럼 어디 놔두고 다닐 걱정이 없다. 지문인식이 더 확실한 방법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의료계는 제도 취지를 공감하면서도 시행 초기 병원들의 혼란이 극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본인확인 의무 위반 시 청구액 환수와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라는 ‘이중규제’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제도 시행을 불과 2주 앞둔 상황임에도 아직까지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받지 못한 데 대해선 강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심지성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공보이사(연세이비인후과 원장)는 지난 8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제도 시행과 관련된 공문이나 유인물 등 지침이 아직 제대로 내려오지 않았다”며 “각 시·도·구 의사회 등에서 제도 시행에 대한 포스터를 배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의원급 개인병원은 자체 제작한 유인물로 환자에게 일일이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분증 확인 과정에서 환자와 병원 직원 간 실랑이도 예상된다. 심 공보이사는 “제대로 된 홍보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 접수처 직원과 환자의 실랑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접수처 직원이 환자에게 신분증을 요청했더니 이를 거부하고 난동을 피우며 직원을 괴롭힌 사건을 실제로 겪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본인 확인을 하지 않았을 때 의료기관만 처분 조치를 받게 할 게 아니라, 타인 신분을 도용하거나 본인 확인을 거부하는 환자에 대한 법적 조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원도 제도 시행으로 인해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의원의 A원장도 정부로부터 구체적 지침을 전달받지 못했다. A원장은 “직원 교육을 하고 있으나 업무량이 늘어나게 되고 환자들과의 마찰도 우려돼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며 “의료현장의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의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하고, 의료기관 과태료 부과 등은 계도 기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등 의약단체들과 지속적으로 간담회를 갖고 현장 의견을 수렴하면서 현안을 공유해왔다며 TV 등 홍보매체를 활용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시행 초기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다빈도 질의사항을 요양기관들에 제공했다”며 “TV, 유튜브, 기차역, 버스정류장 등에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고, 제도의 원활한 안착을 위해 공단 고객센터 상담원을 통한 지원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