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는 이름 그대로 ‘착용할 수 있는 장비’다. 최근 의료기기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형식을 갖춰 탈바꿈하고 있다. 무겁고 큰 장비는 손 안에 담길 정도로 작고 가벼워졌다. 병원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의료기기’로 임상적 데이터를 충족한 제품은 드물다.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업들이 있지만, 규제 문턱을 넘지 못해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것마저 어려운 상태다. 삼성전자에서 오랜 기간 이동통신 기술 개발을 맡아온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를 만나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의 생태계에 대해 들어봤다.
Q. 최근 헬스케어 산업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내 기업들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이어왔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했다. 해외에서도 관심은 많았지만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특히 의료기기로 효과를 입증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손에 꼽을 정도다.
실패 원인은 의료 시장의 ‘미충족 수요’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웨어러블 디바이스 중 심전도 패치는 장시간 검사가 필요한 부정맥을 편리하게 진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연속혈당측정기 개발은 매번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지 않고 혈당 변화를 살피면 좋겠다는 환자들의 바람에서 출발했다. 커프가 없는 (커프리스)혈압계도 ‘하루 2번 혈압을 측정하라’는 의료계의 권고에 맞춰 환자들이 집에서 간편하게 혈압을 측정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헬스케어 기반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기술 중심이 아닌 미충족 수요 중심으로 개발돼야 한다. 수요를 파악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Q. 의료용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기술력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나.
기술력은 제품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바늘 없이 혈당 측정이 가능한 비침습 혈당측정기는 다수의 연구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아직 정확히 검증을 마친 제품은 없다. 즉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들이 실현되더라도 실상 그 효과나 정확도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커프리스 혈압계도 앞서 여러 제품들이 개발됐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임상적 근거가 부족해서다. 의료기기 기술력은 근거에 기반해야 하며, 측정 수치에 대한 정확도를 입증해야 한다.
스카이랩스는 임상적 유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 결과 유럽고혈압학회(ESH) 가이드라인 중 ‘24시간 활동 및 수면 혈압 측정 평가’ 연구에서 스카이랩스의 ‘카트 BP’가 기존 24시간 연속혈압측정기(ABPM)와 유사한 혈압값을 보이며 유효성을 입증했다. 또 국내 의료기기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의학회들과 가정용 혈압계 관련 글로벌 진료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24시간 혈압 측정에 임상적으로 근거를 갖고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제품을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쓸 수 있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Q. 향후 어떤 웨어러블 기기가 주목을 받을까.
비침습 혈당측정기가 차세대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될 것으로 본다. 연속혈당측정기나 인슐린펌프는 기존 혈당측정기보다 편의성을 높이긴 했지만 여전히 침습성 제품이다. 계속 부착하고 있어야 하다 보니 피부가 짓무르거나 두드러기가 날 가능성이 있다. 또 연속혈당측정기는 2주마다 구매해야 되고 소모품도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기기 하나당 10만원이라면 한 달에 240만원 이상 들어가는 셈이다.
비침습 혈당측정기는 피부가 약한 아이들과 고령층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소모품 구입비 등을 절약할 수도 있다. 단 커프리스 혈압계도 유용성 있는 제품이 나오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만큼 임상적 근거가 뒷받침되는 비침습 혈당측정기가 탄생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부전, 호흡기질환, 수면장애 등을 진단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도 연구 단계에 있다. 특히 심부전은 현재 진단 방법이 많지 않고 조기 발견 시 환자의 여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어 의료 미충족 수요가 높은 질환으로 고려된다.
Q. IT 기업들의 참여로 시장 경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의료기기 기업이든 IT 기업이든 경쟁사가 많아지면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다. 시장이 커지면 정부의 관심이 높아져 관련 정책이나 규제도 발전한다. 또 실력 있는 기업은 경쟁사들 사이에서 존재 가치를 더욱 부각시킬 기회를 갖는다.
다만 IT 기업들도 의료적 근거를 갖고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에 참여했으면 한다. 현재도 건강 모니터링에 국한해 웰니스(Wellness) 수준의 제품을 개발하는 곳은 많다. 치료용 또는 진단용 의료기기 개발을 목표로 둔 기업들이 늘어나야 시장도 확장한다.
Q. 산업 성장을 위해 어떤 점이 개선되길 바라는가.
기술력으로 앞장서 가는 기업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역할에 그쳐 있다. 정말 앞서 달리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산 스마트폰, 반도체도 사실 국내에서 최초로 만든 산업은 아니다.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선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효과를 인정받은 제품들이 국내에서 적극 활용돼 빠르게 임상적 근거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