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마침표’ 찍은 의대 증원 논란…혼란은 ‘현재진행형’

사실상 ‘마침표’ 찍은 의대 증원 논란…혼란은 ‘현재진행형’

기사승인 2024-05-19 06:05:02
3월11일 서울의 한 병원 로비에 걸린 대형 홍보사진 옆으로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을 둘러싼 논란이 법원 결정으로 사실상 마침표를 찍으면서 정부 정책은 탄력을 받게 됐지만, 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료 현장 혼란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의대 교수들은 주 4회 진료 검토에 들어가고, 의대생과 전공의는 여전히 복귀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의사단체는 재항고하며 대법원 판단까지 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이 심화될 양상이다.

19일 의료계와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법원에 낸 집행정지 신청이 지난 16일 기각되면서 각 대학이 추진 중인 증원 절차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각 대학이 학칙 개정과 모집 정원 변경을 마무리하면 의대 증원은 사실상 확정된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3월 32개 의대에 늘어날 정원을 배정하며 이달 31일까지 변경된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현재 바뀐 대입 시행계획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승인하고 이를 반영한 모집요강을 발표하는 일만 남았다. 정해진 절차가 완료되면 2025학년도 전국 39개 의대의 최종 선발 인원은 전년보다 1469명 늘어난 4487명이 된다. 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를 포함하면 증원 규모는 1509명까지 확대될 수 있다.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의 경우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다며 ‘신청인 적격’은 인정했다. 다만 집행정지를 인용하면 ‘공공복리’에 대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특히 필수·지역의료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증원 필요성 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3월26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법원 결정에 따라 정부의 의대 증원 과정은 수순을 밟겠지만, 의료계 반발은 격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의료계는 이미 법원에 재항고장 및 재항고 이유서를 제출했다. 의료계의 의대 증원 관련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찬종의 이병철 변호사는 “90%는 승소했다. 10%가 부족했다”며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단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미 법원에 모든 자료가 제출됐기 때문에 서울고법이 대법원으로 사건 기록을 송부하고, 대법원이 서둘러 진행하기만 하면 5월 말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단 생각이다.

의료계는 진료 축소 등의 방식으로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일 조짐이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재판부가 완전히 공공복리에 반하는 판결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공의들은 이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일반의로 개업을 할지언정 필수의료과에서 고생을 하고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며 “의대생들도 마찬가지다. 유급을 불사하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대 교수들이 판결 이후 의협과 완벽하게 같이 가기로 했다. 학생들과 전공의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액션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동네병원 의사와 2차병원 봉직의들도 판결에 격앙해 전공의들만 저렇게 두지 말고 힘을 합쳐 움직이자는 얘기가 의협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고, 의대생들도 현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의대 교수들은 제자들을 설득할 최소한 명분마저 사라졌다고 토로한다”고 했다.

의대 교수들은 근무시간 재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각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모인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법원의 각하·기각 판결에 따라 ‘주 1회 휴진’을 계속하는 방안과 ‘일주일간 휴진’하는 방안을 모두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지난달 26일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으로 피로감을 호소하며 소속 대학병원에서 주 1회 정기 휴진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18일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모집요강 발표를 잠시 중지해달라”고 촉구했다. 전의교협은 “교육부는 각 대학에서 학내 절차에 따라 적법한 학칙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해 달라”며 “정부는 주요 선진국처럼 의료 영역에서 법적 안전망을 구비하고, 의료 수가를 합리화하는 등의 의료정책을 시급히 시행해 필수의료를 회생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3월1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병원들의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 ‘빅5 병원’으로 꼽히는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등은 이미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무급 휴가 등에 돌입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직원들의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2월20일부터 3월30일까지 40일간 의료 분야 순손실이 511억원에 달한다. 현 상황이 연말까지 지속되면 순손실은 4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경희의료원은 6월부터 급여 지급 중단과 희망퇴직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환자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을 시작한 2월19일부터 5월10일까지 복지부의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수술 지연(449건), 진료 차질(140건) 등 2855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6일 성명을 내고 “정부는 환자들의 건강권이 방치돼 있다는 점과 환자 치료권 보장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임을 의료계에 전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은 즉각 복귀해야 한다”면서 “그것만이 그간 의료공백으로 환자, 의료인 사이에 생긴 깊은 불신을 회복할 해결책이다”라고 했다.

정부는 근무지를 이탈 중인 전공의들이 휴가, 병가 등 ‘부득이한 사유’를 소명할 경우 이탈 기간 일부를 수련 기간으로 인정해줄 수 있다는 방침을 새로 내놓는 등 설득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일을 전공의 복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의 수련 규정 및 시행규칙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에 한 달 이상 공백이 발생하면 그 기간만큼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한다. 전공의가 수련을 받지 않은 기간이 3개월을 넘으면 그 해 수련을 마치지 못해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가 1년 늦어진다. 내년 초 전문의 시험을 앞둔 레지던트 3·4년차는 2026년 초가 돼서야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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