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당시 20살 ‘신예’ 미드 라이너가 LoL 씬을 뒤흔들었다. “진짜 ‘제카’ 미쳤어요. 크레이지 ‘제카’.” ‘클템’ 이현우 해설의 외침이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디펜딩 챔피언 ‘스카웃’ 이예찬마저 맹렬한 사일러스에 4연속으로 무릎을 꿇었다. ‘제카’ 김건우는 그렇게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로얄로더가 됐다.
최정상에 올랐음에도 김건우는 여전히 도전자의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소속팀 한화생명e스포츠(한화생명)는 지난해 롤드컵 진출 실패의 아픔을 뒤로하고, 올 시즌 3강으로 우뚝 섰다. 이제 김건우의 시선은 오직 ‘우승’으로 향한다.
쿠키뉴스는 지난 13일 일산 한화생명 캠프원에서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건우를 만났다.
“한 발짝만 가면 MSI였는데…10점 만점에 5~6점”
한화생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젠지e스포츠(젠지) 3인방 ‘피넛’ 한왕호, ‘도란’ 최현준, ‘딜라이트’ 유환중을 영입했다. 기존에 있던 ‘제카’ 김건우와 ‘바이퍼’ 박도현을 더해 ‘슈퍼팀’을 구축한 셈이다. 그리고 맞이한 스프링에서 한화생명은 15승3패, 압도적인 정규리그 성적을 거뒀다. 최종 3위에 머무르며 아쉬움도 남았으나 분명히 ‘파괴전차’는 지난 시즌에 비해 강력해졌다.
김건우는 “박도현을 제외하고 다 처음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었다. 세 선수가 같은 팀에 있던 선수들이다 보니 합을 맞추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면서 “시즌 후반부로 가면서 실수가 줄어들고 플레이도 훨씬 나아졌다. 앞으로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겉만 보면 작년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목표가 높았다. 기대치에 비해 낮은 성적을 냈다고 생각한다”면서 “한 발짝만 가면 결승전이고, MSI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거기서 무너진 점이 뼈아프다. 너무 아쉽다”고 돌아봤다.
새로운 선수들과 합은 어땠을까. 김건우는 “‘피넛’ 한왕호는 운영을 똑똑하게 잘한다. 베테랑 선수라 잘 맞춰주기만 해도 게임이 편했다. 호흡도 잘 맞았다”고 했다. 다만 그에게도 모든 합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도란’ 최현준과 의견이 갈렸다. 서로 알고 있는 ‘사이드 운영’이 달랐다. 어느 타이밍에 라인을 밀고 본대에 붙을 건지에 대해 차이가 있었다”던 김건우는 “최현준과 친해지려고 노력 많이 했다. 점차 가까워지고 말도 많이 하면서 생각 차이를 좁혀갔다. 나중에는 경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특히 한왕호에 대해 김건우는 “배울 점이 많았다. 교전할 때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오더가 인상적”이라면서 “(한왕호가) 경험이 많다 보니, 오더 했을 때 잘 될 확률이 높은 편이다. 수행 능력도 뛰어나다. 나머지 4명을 이끌 수 있는 선수”라고 찬사를 보냈다.
스프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김건우는 “플레이오프에서 T1을 상대로 이겼을 때”라고 말했다. 당시 한화생명은 T1을 세트스코어 3-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결승 진출 및 MSI 고지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후 젠지에 패한 한화생명은 T1과 결승 티켓 한 장을 둔 일전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무너졌다. 김건우는 “T1과 다시 붙어서 진 순간도 기억난다. 결승 진출전까지 가서 패한 점이 더 마음 아프다. 최대한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해봤고, 긴 시간 동안 연습했는데 져서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0점 만점에서 몇 점을 주고 싶냐는 질문에 김건우는 “5~6점을 주고 싶다. 애매했다. 내가 더 잘했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게 실현되지 못해서 아쉽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 시즌 동부권팀(6~10위)에만 승리하고 서부권팀(1~5위)에는 모두 패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에 졌던 팀 상대로 분전하는 경기가 많았다. 서머에는 그걸 넘어서 최상위권 팀을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카’가 바라본 ‘라인 스왑’
이번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최대 화두는 ‘라인 스왑’이었다. 라인 스왑은 바텀 듀오를 탑으로 올리고 탑을 하단으로 내리는 전략이다. 베인·트위스티드 페이트와 같은 원거리 탑 챔피언을 말리기 위해 시작된 라인 스왑은 점차 발전해, 조합상 초중반 약한 라인전을 넘기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상대 허를 찌르기 위해 변칙적으로 구사하기도 한다.
LCK에서 첫선을 보인 팀은 한화생명이다. 한화생명은 T1과 결승 진출전 1세트에 라인 스왑 전략을 사용해 세트 승을 거둔 바 있다. 김건우는 “한화생명이 라인 스왑을 처음 썼다. 당시에는 본능적으로 대회 전날에 ‘각 나오면 써보자’고 했다. 현재는 주요 메타로 자리 잡았다. 한화생명도 (라인 스왑을) 한 지 얼마 안 됐다. 사용하기 까다로운 부분도 있다. 상황에 맞게 잘 쓴다면 좋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략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면 그에 마땅한 대처법이 나오기 마련이다. 서머에는 좋은 대응책이 나와서 결국 잘 안 나오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롤드컵 우승은 프로게이머 인생 최고의 순간…다시 느끼고 싶다”
공부 안 하고 게임만 좋아하던 ‘소년’ 김건우는 2019년 KT 아카데미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로서 첫발을 디뎠다. 그는 “어렸을 때 태권도에 진심이었다. 어느 순간 그게 바뀌면서 프로게이머가 됐다. 만약 게임을 안 했다면 태권도로 진로를 정했을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에게 부모님은 가장 큰 조력자였다. 김건우는 “입단하기 전에는 게임만 하는 아들이었다. 부모님께 프로 구단에서 연락 왔다고 말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면서 “바로 고등학교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응원 많이 해주셨다”고 부모님께 고마움을 드러냈다.
유난히 큰 체형을 지닌 김건우는 게임 내 강한 라인전 능력을 더해 ‘슈퍼 솔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누나가 옛날 사진을 보내줘서 봤는데, 엄청 말랐더라. KT 연습생 할 때 한순간에 20kg가 쪘다. 그때부터 체격이 커졌다. 연습생 때 아무 걱정 없이 먹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면서 “취미를 운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 3대 몇이냐는 질문이 많은데 사실 제대로 측정하면 3대 200도 안 나온다. 운동이 취미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는 중이다. 사옥 지하 헬스장에서 유튜브 보면서 운동 자세 공부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우연한 기회로 2020·2021시즌을 중국에서 보낸 김건우는 2022년 DRX 소속으로 LCK에 데뷔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김건우는 데뷔 시즌부터 무려 ‘롤드컵 위너’로 등극했다. LCK 우승도 없는 신인 선수가 단숨에 최고 미드 라이너가 됐다. ‘2022 LCK 올해의 선수’ 역시 그의 몫이었다. 당시를 떠올린 김건우는 “LCK 우승부터 쌓고 롤드컵 우승하는데 정석인데, 나는 반대로 롤드컵을 먼저 우승했다. 이상하면서 기분 좋기도 하다”며 “LCK 우승을 해야만 롤드컵 우승이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었단 걸 증명할 수 있다. 나에겐 리그 우승이 정말 간절하다”고 열망했다.
이미 최고 선수에 올랐던 만큼 동기부여를 하기 쉽지 않을 터. 김건우는 “옛날 경기를 많이 찾아본다. 다른 선수들이 우승했을 때 경기도 본다. 지난해 T1이 롤드컵 우승할 때도 직관했다”면서 “타 선수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 자극을 받고 동기부여가 된다. 첫 우승이 롤드컵이었다. 그 순간은 프로게이머로서 최고의 순간이다. 꼭 다시 경험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건우는 서머와 올 한해 목표에 대해 “스프링에서 못 이겨본 팀과 만났을 때 확실한 경기력으로 승리하겠다. 뚜렷한 목표”라면서 “인간 김건우로서 매년 발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봤을 때는 지난해와 크게 달리진 게 없다. 서머 때는 많은 승리를 챙기면서 발전하고 싶다. 그걸 바탕으로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건강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김건우는 팬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작년 롤드컵 선발전 떨어지고 나서 팬분들이 슬프게 우셨어요. 그걸 보면서 내년에는 꼭 올라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사실 스프링도 다짐과는 다르게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서머에는 꼭 성적을 올려서 팬분들을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