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빈부나 환경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예술을 통해 숭고한 미적 의식과 안목에 접할 권리가 있다. 학생들은 공교육에서 음악과 미술을 배울 권리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초등학교 1, 2학년에게는 그 권리가 없다. 음악, 미술 과목이 통합교과 ‘즐거운 생활’로 묶여 있기 때문인데, 현재 ‘즐거운 생활’은 ‘지금-여기-우리-삶’을 역량으로(교육부, 바른생활·슬기로운 생활·즐거운 생활 교육과정. 2022) 가르치라고 제시되는 등, 특히 최근 음악·미술 교과를 사실상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이는 현행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두드러진다. 미술과 음악 교과의 항구적이고 본질적인 지식, 기능, 가치 및 태도 등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평생학습의 토대가 되는 기본 학습 내용은 누락된 채, ‘나는 누구인가’ 같이, 저학년 어린이의 발달이나 정서와의 부합 여부도 파악할 수 없는 주제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OECD 선진국 중에 예술적 소양이 대폭 성장하는 만 6, 7세 시기에 예술교육이 음악, 미술 같이 교과로서 부재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는 왜 프랑스나 영국 같은 유럽이나 미국, 일본, 심지어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음악·미술 학습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일까. 손홍민, 김연아, 임윤찬 같은 한국을 빛내는 문화예술계 인물들이, 초등학교 1, 2학년의 중요한 시기에 공교육에서는 재능을 발휘하기는커녕 재능을 발견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예술 강국에서 왜 하필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는 폭발적인 창의력의 시기에 양질의 예술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통합교과서에 사용되는 미술의 형태는 교과의 학습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에 그쳐 일차원적인 사용에 머물고 있다. 통합교과의 주제 중심의 단원 구성에서는 미술은 주제에 대한 학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두드러지며, ‘어떻게 표현할까’라는 고민보다는 ‘무엇을 나타낼까?’라는 주제중심의, 질문의 답에 가까운 활동들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학생들의 예술적 욕구를 충분히 수용하기 어려우며 단순한 표현 활동에 대한 제시만 되어 있을 뿐, 전문가적 관점의 안내나 깊이 있는 활용이 없다.”(윤00, 초등교사)
“교과서를 시각화 중심으로 구현하게 되면서 학습에서 음악 요소가 간과되었다. 음악 전공자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악보 아닌 악보를 제시하여 이 노래가 어떤 음으로 불러야 하는지, 어떤 장단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학습자들은 교사의 시범이 없으면 교과서의 내용만으로 도저히 수업이 불가한 추상적인 교과서를 가지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동휘, 초등학교 1-2학년 통합교과 ‘즐거운 생활’에서 음악교과 분리 규탄문. 2024)
음악과 미술은 예술로서 인간 성장에 너무나 중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1학년에서 통합교과로 인해 온전히 운영되지 못하여 인간의 미적 교육으로서 적기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악에서 노래는 장단 또는 리듬, 선율 구조, 노래가 연행되는 맥락, 다른 지역 노래와의 연관성, 사회・문화적 관점, 역사적 배경, 타 교과와의 연관성, 범교과 등을 포괄하여 입체적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1-2학년 교육현장에서 음악은 이러한 고려가 전혀 없이 ‘노래 부르기’만 하고 있다. 미술 역시 초등학교 1학년에서 다양한 재료와 방법에 의한 학문적 특성, 미술이라는 진정한 예술로서의 수업 활동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으로 색연필 색칠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1~2학년인 6세~7세 시기는 음악교육 청감각적·음악적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서 청감각적·음악적 발달을 지원하는 음악 교수·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상력과 창조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적기가 바로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로서 이는 구체적 조작기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이루어지는 아동의 미술 표현은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탐색하고 인지와 감각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해 아동은 자신을 적절히 표현하며 세계와의 관계를 조절해간다.
매클루언은 “매체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몸의 확장이며, 동시에 몸의 연장이다”라고 하였다. 이 단계의 아동에게 다양한 매체를 다루고 감각을 탐색해보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자신의 몸, 즉 자아를 확장하고 세계에 대해 더욱 열린 마음으로 자신감을 갖고 관계를 맺어가는 바탕이 된다. (이지윤, 즐거운 생활과 미술교육. 2024) 음악은 음악으로, 미술은 미술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즐거운 생활’에서 강조하는 초학문적 융합의 속성은 현대 학문의 속성이자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지향이기도 하다. 삶 연계, 학생 중심 수업, 교육과정 재구성, 맞춤형 수업은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교과에서 추구해야 할 당위적 진술이다. 현재 음악과 미술 교과에서는 이미 ‘정체성 역량’이나 ‘공동체 역량’ 등의 교과 역량 및 교과 목표와 내용을 비롯하여 학생들의 삶과의 연계를 기반으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통합교과만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거나 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은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현재 교과 교육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정서와 감성이 메말라가고 있는 현상은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출발은 학교이다. 가뜩이나 삭막한 학교교육에서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이 저학년 교실에서 사라지고 그 결과 성적에 목매는 문제의 출발점이 바로 ‘즐거운 생활’이다. 단순히 결과물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 체험과 재료의 빈약함은 인간의 삶을 풍성히 하는 감각과 진정한 예술 체험 부재로 3학년 이후 교과 운영의 체계와 근간 자체를 흔들어 왔다. 결국에는 인간의 균형적 발전에 적절한 교육이 미루어지면서 학생이 제대로 상상력과 심미성 교육을 받기 위해서 학교가 아니라 학원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프랑스나 영국 같은 유럽이나 일본, 심지어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들 가운데에 예술적 소양이 대폭 성장하는 만 6, 7세 시기에 예술교육이 예술교육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 음악, 미술 교과가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즐거운 생활’에서 음악과 미술을 분리 운영하여, 이미 음악과 미술을 운영하고 있는 유치원 누리과정과 초등학교 3, 4학년 내용을 연계하여 학문의 기초 교육을 충실하게 실행한다면, 초등학교 1, 2학년 예술교육의 정상화와 함께, 디지털과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며 이와 동시에 우리가 지향하는 인간다움, 인간다운 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에게 음악과 미술을 돌려주자. 글=류지영 춘천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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