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은 약자들에게 더 가혹한 시기였다. 선진국과 중·저소득 국가 간 건강 불평등 문제는 심화됐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건의료 인력 양성과 백신·치료제 확보가 중요해졌다.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이 팬데믹 발생 가능성이 높은 감염성 질환의 백신과 치료제, 진단 플랫폼 연구개발(R&D) 지원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라이트재단은 한국의 보건의료 R&D 역량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팔을 걷어붙였다.
30일 쿠키뉴스와 만난 라이트재단 측은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시스템 확립을 통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글로벌 보건 공적개발원조(ODA)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이트재단은 보건복지부, 한국생명과학기업,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3자 협력을 통해 글로벌 헬스 분야 R&D를 지원하기 위해 2018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민관협력 비영리재단이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이 국제보건 형평성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중·저소득 국가에 기여하는 보건의료 R&D 프로젝트에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라이트재단은 설립 이후 현재까지 총 58개, 약 787억원 규모의 R&D 지원 사업을 펼쳤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 LG화학, 코오롱생명과학, 바이오니아, 에스디바이오센서, 유바이오로직스 등이 지원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며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보건의료 분야에 큰 숙제를 던졌다. 백신, 진단키트 같은 보건기술이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팬데믹은 전 세계를 할퀴었지만 기술도, 자본도 없었던 중·저소득 국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고, 빈곤과 기아는 심화되며 국가 간 ODA의 중요성이 커졌다.
한국의 ODA 규모는 단기간 높은 성장을 보였다. 국무조정실의 ‘2021~2023 대한민국 ODA 백서’에 따르면, 2009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이후 2010년 1조3411억원을 ODA에 썼다. 이후 2017년 2조6359억원에 이어 2018년 3조원을 돌파(3조482억원)했다. 지난해 4조7771억원이었던 ODA 예산은 올해 6조2629억원으로 1조5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짧은 기간 ODA 규모는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우리나라에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 경제 규모 등을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ODA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실제 전체 ODA 지원 금액에서 한국은 DAC 회원 30개국 중 16위를 차지하지만, 국민총소득(GNI) 대비 개발도상국 ODA 지원 규모는 DAC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GNI 대비 ODA 비중은 0.17%에 불과하다. 이는 DAC 회원 30개국 중 28번째다.
라이트재단의 목표는 국가와 기업이 상호 협력해 ODA를 강화하고, 전 세계 건강 형평성을 구축하는 것이다. 라이트재단 관계자는 “대다수 국가는 ODA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거의 유일하게 ODA 예산을 늘리며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았고, 한국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면서 “라이트재단은 국제 보건 분야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체감하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단은 한국의 강점이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의 R&D를 지원하고, 중·저소득 국가에 필요한 필수의료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ODA를 지속적으로 해나가겠다”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사업 지원금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국제 보건 진출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라이트재단은 최근 단일클론항체 바이오의약품, 성 매개 감염 진단 등 감염병 R&D를 위한 연구비 지원 과제를 모집했다. 단일클론항체 바이오의약품 부문에선 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 질환(RSV), 말라리아 등의 과제를 지원한다. 성 매개 감염 진단 분야에선 임균, 클라미디아 트라코마티스, 질편모충, 매독균 감염 등 현장 진단 검사 과제를 뒷받침한다. 성 매개 감염 진단 분야는 국제기구인 ‘혁신적 진단기기재단(FIND)’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임상시험·검증 직전 단계부터 허가 심사 단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사전적격성 심사(PQ) 인증 획득 과정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라이트재단 관계자는 “백신, 치료제 등 의약품 개발에 과제당 최대 40억원씩 3년 동안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