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등에 밀려 반 년 가까이 발표가 지연돼 온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실무안이 발표되면서 원자력발전 생태계가 다시 확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다만 원전 설비 소요 기간, 상향된 보급 목표치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본 총괄위원회는 향후 15년(2024~2038년)간 국내 전력 수요 전망, 발전소 건설 및 운영 방안을 담은 전기본 실무안을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실무안에 따르면, 2038년 전력 목표설비(실효 용량)는 157.8GW(기가와트), 확정설비는 147.2GW로 추산됐다. 현재까지 설치됐거나 추진 중인 설비(147.2GW)만으론 이를 충당하지 못해 10.6GW가 부족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에 전기본 총괄위는 2038년까지 신규 원전 최대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설치해 추가로 필요한 발전설비 10.6GW 중 5.1GW를 원전에 배정했다. 4.4GW는 대형 원전 3기로, 0.7GW는 현재 기술개발 중인 SMR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예상대로 원전에 힘을 실은 형태다. 현재 국내 가동 중인 원전은 총 26기로, 여기에 이미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와 건설 준비 중인 신한울 3·4호기가 완공되면 2038년에는 가동 원전 수가 30기로 늘어난다. 이번 실무안 계획까지 포함하면 국내 원전 수는 SMR를 합쳐 최대 34기가 되는 셈이다.
모든 계획이 현실화됐을 때 국내 원전 발전량은 2030년 204.2TWh(테라와트시)에서 2038년 249.7TWh로, 같은 기간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31.8%에서 35.6%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원전 비중은 30.68%였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원전 1기 건설에 통상 167개월(13년11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계획대로라면 올해 안에 부지 확보 등 구체적 계획이 수립돼야 하지만, 주민수용 절차 등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기간이다. 전기본 총괄위원인 전우영 전남대 교수는 “원전의 경우 입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수용성 등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만약 입지 선정이 지연돼 착공이 늦어진다면 그만큼 다른 무탄소 전원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SMR 역시 개발 초기 단계에 있다. SMR 개발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미국에서도 상용화 사례가 없으며, 미국 원전 설계업체 뉴스케일파워는 지난해 유타주에서 SMR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대형 원전 설비와 맞먹는 비용 문제로 인해 사업을 철회했다.
특히 대형 원전 대비 검증되지 않아 안전성 우려에 따른 주민수용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원전 크기가 작아지면서 안전설비 등도 함께 압축되면 이와 관련된 기술 비용도 증가할 뿐만 아니라 안전성은 더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그대로…“COP28 의식한 목표치”
태양광·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 목표치도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본 총괄위는 2030년 태양광·풍력 설비 보급 목표를 기존 65.8GW에서 72GW로 상향했고, 2038년 기준으로는 99.8GW에서 115.5GW로 확대했다. 당장 6년 후인 2030년 목표치 72GW는 2022년 기준 국내에 설치된 태양광·풍력 총 설치용량(23GW)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이러한 증가분은 사실상 풍력보다는 태양광에서 대부분 충당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 주도로 해상풍력사업 인허가 창구를 단일화해 현재 10여 년이 소요되는 절차 기간을 평균 34개월로 단축하는 해상풍력특별법안이 지난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돼 사업 진입장벽을 허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재생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조화롭게 확대했다지만 업계 내 기본적인 틀이 되어줄 법안조차 없는 상황에서 제시한 목표의 절반 이상이라도 실현이 가능할지는 아직까진 의문”이라며 “국내외 시선을 의식해 목표를 다소 과하게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각에선 지난해 말 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합의안을 의식한 목표치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당시 COP28에서 한국은 2022년 재생에너지 설치용량(23GW)의 3배 규모인 69GW를 2030년까지 확보하겠다고 합의한 바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늘렸지만 발전 비중 자체는 10차 전기본과 동일한 점에 대해서도 환경단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정부가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21.6%+α로 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번 실무안에는 10차 전기본과 동일한 21.6%의 발전 비중이 제시됐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지 않으면서 한국은 2030년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생에너지 비중 최하위를 이어갈 예정”이라며 “OECD 회원국 중 한국과 국내총생산(GDP)이 유사한 멕시코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3%로 높이기로 했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이어 “여러 연구기관 연구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에 110~199GW의 재생에너지가 필요한데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목표치(2030년 72GW)는 그 어떤 연구기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도 부합하지 않는 적은 수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모든 무탄소에너지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기 위한 송·배전망 구축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목표치에 따라 설비용량이 급증하면 그만큼 송전망도 증가해야 하는데, 막상 전기를 수요지로 배분할 전력망을 확충하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역시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으며, 한국전력은 전기요금 동결에 따른 누적 적자 약 40조원이 쌓여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본 총괄위 관계자는 “11차 전기본에 이어 6개월 내 국가 송전망 확충 계획이 수립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