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을 총괄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기원이 CJ ENM으로부터 바둑TV를 인수한 이후 오히려 소속 프로기사의 실익이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는 재단법인이다.
12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기원은 바둑TV 흑자 전환 이후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프로기사협회와 적절한 수준의 배분을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한국기원은 지난 2015년 CJ ENM으로부터 ‘4년 총액 80억, 매년 20억원 납부’ 조건으로 바둑TV를 인수했다. 인수 시점 기준으로, 프로기사 및 바둑 관계자들은 바둑TV 가치를 200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한국기원은 2015년 8월 CJ ENM의 바둑TV 운영 방식을 규탄하며 전격 인수에 나섰다. 소속 프로 선수의 모든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한국기원은 ‘바둑계의 KBO’ 같은 존재다. 한국기원이 방송사에 중계권을 판매하는 대신 직접 방송국 인수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후 2016년 1월1일부터 송출된 바둑TV의 모든 방송에 대해 한국기원이 제작을 맡았다.
당시 한국기원 ‘바둑채널사업단’은 “CJ가 운영하는 바둑TV가 제작비로 기전 총 비용의 10%를 가져갔다”고 비판하면서 “앞으로는 3%로 조정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이어 “바둑TV가 콘텐츠 사용료(바둑 기보 등)를 내지 않고 거꾸로 돈을 받아가는 것도 이상하다”며 “기존 지급하던 ‘협찬비’ 또한 3%로 제한해 지급하겠다”고 공지했다.
이를 통해 발생하는 추가 수익은 당초 프로기사들과 나눌 방침이었다. 한국기원이 운영을 맡은 이후 바둑TV는 CJ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와 비교했을 때 강좌와 다큐멘터리, 바둑뉴스 등 사실상 모든 면에서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대다수의 방송이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가 직접 펼치는 경기의 생방송⋅재방송 등 대국 위주로 편성됐기 때문에, 기사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한국 프로기사협회 이전 집행부는 이에 대해 “한국기원 측에 흑자가 나면 주기로 약속했던 바둑TV 이익분에 대한 배분을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한국기원 측은 “계약서가 없고, 전 집행부가 약속한 것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프로바둑계 최대 기전인 한국바둑리그에 대한 불만도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 프로기사협회는 “한국기원이 바둑리그 주관료로 전체 예산의 18%를 떼어가고, 바둑TV가 홍보비 명목으로 전체 예산의 13.6%를 떼어간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한국기원이 자회사인 바둑TV를 내세워 이중으로 비용을 떼어가는 것으로, 결국 한국기원이 바둑리그 전체 예산의 31.6%를 가져가고 있는 것”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총 규모 34억원인 바둑리그 우승 상금은 2억5000만원으로, 상금은 해당 팀 소속 선수 5명이 나눈다. 나머지 상금은 준우승 1억, 3위 6000만원, 4위 3000만원으로 상금 총액은 기전 총 규모의 약 12.9%다.
만약 한국기원이 바둑리그 총 예산의 31.6%를 가져간다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국기원이 CJ ENM으로부터 바둑TV를 인수할 당시 지적했던 내용보다 오히려 더 후퇴한 상황이다. 한국기원은 CJ가 운영하던 바둑TV가 제작비로 전체 예산의 10%를 가져갔다는 점을 문제 삼았는데, 정작 바둑TV를 인수한 이후에는 이 비용을 크게 인상한 셈이기 때문이다. 쿠키뉴스는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한국기원 측의 입장을 물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편 온라인 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는 ‘[팩트체크] 바둑TV 제작비, 최고 50%까지 뗐다’라는 글에서 한국기원 바둑TV의 과도한 수익 추구에 대해 꼬집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해당 글에는 총 규모 1억원 규모 프로대회에서 바둑TV가 ‘5000만원 이상’을 챙겼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규모 기전일수록 재주 부리는 존재는 뒷전이고 좌판 깐 쪽이 더 챙기고 있었다”는 사이버오로 측의 비판대로, 한국기원이 바둑TV를 인수한 이후 오히려 프로기사의 수입은 줄어들고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TV만 수익 비율이 올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CJ ENM과 한국기원은 방송 전문성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로 인한 방송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생중계로 진행하는 바둑리그에서 갑자기 시계를 바꿨다 시간패가 속출하는 상황 끝에 다시 원래 계시기로 돌아갔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계시원의 실수로 경기 도중 바둑판을 검은색 덮개로 가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한국기원 운영 9년차 바둑TV는 여전히 홍역을 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바둑계 한 관계자는 “한국기원이 운영하는 바둑TV는 특정 기사 몇 명에게 의존도가 너무 높고, 천편일률적인 경기 중계와 재방송 위주”라며 “최근에는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전이 진행되고 있는데 시청률이 잘 나오는 특정 기사 경기의 재방송을 송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둑계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한국기원이 지나치게 바둑TV 수입만 추구하는 행태는 프로기사에게도, 바둑 보급 측면에서도 결코 올바른 모습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