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세기의 이혼소송’ 2심 판결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 단위 재산분할 판단에 영향을 미친 ‘주식가치 산정’이 잘못됐다는 취지다.
최 회장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재판 현안 관련 설명회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사전에 예고된 바 없는 ‘깜짝 등장’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일로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린다. 제 생각에 한 번은 여러분 앞에 나와 직접 제가 사과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최 회장은 이날 2가지 이유를 들며 상고 이유를 직접 밝혔다. 그는 “재산분할과 관련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며 “주식이 분할 대상이 돼야 하는지, 얼마나 돼야 하는지에 대한 전제에 속하는 아주 치명적이고 큰 오류”라고 강조했다. 이어 “SK의 성장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 이뤄졌다는 판결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저뿐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명예와 긍지가 실추됐다”며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디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최 회장은 “앞으로 이런 판결과 관계없이 제가 맡은바 소명인 활동에 대해 좀 더 충실히 잘해서 국가 경제 발전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과 SK 측은 앞서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 1994년 취득한 대한텔레콤 주식 가치 산정에 있어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내조 기여가 극도로 과다하게 계산됐다는 것이다.
SK C&C의 전신인 대한텔레콤은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그룹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대한텔레콤 주식에 대한 가치 산정이 현재 SK의 가치를 따져보는 근간이 된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최 회장에게 대한텔레콤 주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1994년 약 2억8000만원을 증여했다. 최 회장은 이 돈으로 같은 해 11월 당시 누적 적자 수십억원 이상인 대한텔레콤 주식 70만주를 주당 400원에 매수했다. 지난 1998년 SK C&C로 사명을 바꾼 대한텔레콤의 주식은 이후 두차례 액면분할을 거치며 최초 명목 가액의 50분의 1로 줄었다.
쟁점은 고 최 회장 사후 SK C&C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SK C&C가 고 최 회장 별세 이후 355배 주식 가치가 성장했다고 봤다. 최 회장이 이끌었던 당시에 주식 가치가 크게 올랐기에 부인인 노 관장에게도 기여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항소심 재판부는 △1994년 1월 최 회장 취득 당시 대한텔레콤 가치를 주당 8원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지난 2009년 11월 주당 3만5650원으로 각각 계산했다.
그러나 이 계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상달 회계법인 청현 회계사는 “두 차례 액면분할을 고려하면 1998년 5월 당시 대한텔레콤 주식 가액은 주당 100원이 아닌 1000원이 된다”고 밝혔다. 1994년에 취득한 1주가 액면분할을 통해 2009년에는 50주가 됐다. 이에 가치를 따지려면 50으로 각각 나눠야 한다. 1998년 당시 5만원의 가치를 50으로 나누면 1000원이지만, 이를 100원으로 판단해 오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선대회장 시기 대한텔레콤의 가치가 성장된 것이 무시되고 계산 왜곡이 발생했다는 설명도 있었다. 최 회장 측 법률 대리인인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SK C&C의 가치가 94년부터 98년까지 125배 급성장했음에도 잘못된 계산으로 12배 성장했다고 판단했다”며 “반대로 선대 회장 사망 이후에는 35.5배 성장했음에도 355배 성장했다고 봤다”고 이야기했다. SK C&C와 같은 SI 회사인 삼성SDS, LG CNS 등도 같은 시기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됐다.
그는 “잘못된 결과치에 근거해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자수성가형 재벌2세’라는 이상한 논리를 내놨다”며 “이같은 결과치는 SK그룹 지분을 분할 대상 재산으로 결정하고 분할 비율 산정도 고려한 근거가 됐다. 치명적 오류를 정정한 후 결론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인 ‘6공화국’ 당시 SK가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는 것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은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 SK그룹이 6공 비자금과 비호 아래 성장했다고 판시됐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6공 비자금으로 인정된 300억원의 전달 방식과 사용처 등에 대해서는 “규명이 필요하다”며 “지난 1995년 비자금 조사 때도 전혀 언급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6공의 사돈 기업이었기에 오히려 피해를 봤다는 주장도 나왔다. 6공 기간 중 SK는 1.8배 성장하는 데 그쳤다. 10대 그룹 중 성장률은 9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대우는 4.3배 성장했다. 이 위원장은 “6공 이후 SK에 대한 광범위한 세무조사가 진행돼 기업 경영에 부담이 컸다. 그러나 세무조사 등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며 “SK는 절대 6공의 특혜로 성장한 기업이 아니다. 해묵은 가짜뉴스”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SK 측은 오는 21일 이내에 상고할 예정이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