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 잇단 ‘코리아 패싱’…“유인책 필요”

글로벌 제약사 잇단 ‘코리아 패싱’…“유인책 필요”

기사승인 2024-07-08 06:00:11
쿠키뉴스 자료사진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 중국과 일본 등에 먼저 신약을 출시하고 한국 판매는 뒤로 미루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효과 좋은 신약이 보험급여에 신속히 등재돼 환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약가정책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강보험 시스템 때문에 외국계 제약사들이 한국과 신약 협상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시장 진출을 표명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혁신 신약에 대한 허가를 받았으나 건강보험 등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의약품도 적지 않다.

다국적 제약사가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를 미루거나 허가 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에는 낮은 약가 책정, 거듭되는 약가 인하, 길고 복잡한 건보 등재 과정 등이 있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신약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 협상을 거쳐 보험급여를 적용받기까지 보통 330일 정도 소요된다. 자료 보완 작업이 추가되면 4~5년으로 기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신약이 허가를 획득한 후 2~3개월 안에 보험급여를 받는다.

미국제약협회(PhRM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최근 10년간 전 세계에서 개발·허가된 혁신 의약품 408개 중 급여 적용 후 한국에 도입된 치료제는 35% 정도에 불과하다. 외국계 신약이 국내에 도입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년이다. 세계에서 첫 출시 후 1년 안에 한국에 진입하는 신약은 비급여 도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5%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신약 도입률이 18%인 것과 비교하면 3배 넘게 차이 난다.

코리아 패싱은 중국이 한국을 보험 약가 참조 국가에 포함시키면서 더 잦아졌다. 현재 우리나라는 급여가 적용된 의약품 표시가격을 전 세계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자국의 의약품 가격을 책정할 때 한국의 사례를 참조한다. 특히 중국 정부는 한국에서 먼저 급여 등재된 약가를 참조해 약가안을 마련하고, 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제약사와 협상을 벌인다. 중국 정부와 제약사 양측이 제시한 약가 차이가 15% 이상만 돼도 중국은 협상을 포기한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은 한국에서 의약품 급여 등재를 늦추더라도 의약품 시장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중국과 먼저 약가 협상에 나서려 하고, 한국은 의약품 출시 순서에서 뒤로 밀리게 된다.

이렇게 가다간 한국이 글로벌 제약사들의 의약품 공급망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혁신 신약에 대한 환급제 즉, 이중약가제 개편을 꼽는다. 이중약가제란 급여목록상의 의약품 표시가격과 실제 거래가격과의 차액을 제약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환급하는 것이다. 표시약가를 현행보다 높게 책정하면 해외 국가가 참고하는 한국의 약가 수준이 올라가면서 코리아 패싱이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강보험 의약품 가격을 무제한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중국이 약가 협상에서 한국의 낮은 급여 약가를 참조함에 따라 중국과의 비즈니스에 타격을 입게 된 제약사들은 한국에 의약품을 가장 나중에 출시하거나 철수하는 코리아 패싱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약품 코리아 패싱을 방치하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널리 처방되는 양질의 의약품을 확보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이중약가제를 개편해 문제가 되는 의약품에 대한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해외 의약품 공급 라인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약가 인상뿐 아니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윤영미 대한약사회 정책홍보수석은 “신약 공급은 약가만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을 출시해 우리나라 판매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하려면 유인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료가 급한 환자들은 하루빨리 혁신 신약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정승훈 면역항암환우회 홍보이사는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환자들에게 신약의 등장은 한 줄기 희망과 같다”며 “혁신 신약을 개발한 기업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고, 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조를 조성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선순환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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