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두 살배기 아들을 62시간 동안 혼자 방치해 숨지게 한 경계선 지능의 20대 친모 A씨에게 징역 11년형이 확정됐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경계선 지능으로 성장과정에서 적절한 양육과 교육을 받지 못해 사회적 상황에서 판단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11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느린학습자’로 불리는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가정의 안전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계선 지능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경우 양육자의 부주의나 판단 미흡으로 아이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가정도 지속적인 교육과 지원 등을 통해 자녀를 키울 수는 있다. 하지만 양육 방법 교육이나 맞춤 돌봄 등 공적 지원은 없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 한부모·자녀 통합지원단’을 출범하고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관내 한부모가정은 총 28만6878가구다. 이중 자녀 양육에서 안전이 우려되는 경계선 지능 한부모는 약 4만명으로 추산된다. 경계선 지능은 지능지수(IQ)가 70~85인 사람이다. 낮은 인지 능력으로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지적장애(IQ 70 이하)에는 해당하지 않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미혼모 시설 및 관련 단체 등은 최근 경계선 지능이 의심되는 한부모 가정이 늘어 나는 추세라고 판단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가정의 아이가 부모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화상을 입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맡겨둔 개에 얼굴을 물리는 등 아이 안전이 위태로운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겉으로는 문제가 전혀 없는 비혼 엄마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엄마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인지 대처 능력이 좋아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떨어진다. 한 명도 돌봄이 힘든데 아이를 3~4명까지 출산하는 경우도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한부모라면 누구나 전화나 카카오톡(서울시 경계선지능 한부모 지원)으로 상담받을 수 있다. 경계선 지능이 의심되는 한부모 본인뿐 아니라 지인이나 지역사회 사례관리 기관 등 누구나 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시는 체계적인 상담과 사례관리를 위해 한부모가족지원센터 내 서울시 경계선지능 한부모·자녀 통합지원단을 신설, 상담창구 운영 및 사례관리 등을 진행한다. 사단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와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서울시 통합지원단의 사례관리위원회에 참여해 현장경험 등을 바탕으로 경계선지능 한부모 사정에 맞춘 사례관리 솔루션을 제시할 예정이다.
경계선지능 한부모·자녀 통합지원은 전용 창구(전화·SNS)를 통한 상담과 검사 후 사례관리위원회에서 개인별 맞춤 방안을 마련해서 지원해주는 프로세스로 추진된다.
먼저 상담 → 의심군 선별 → 검사를 거쳐 경계선 지능(IQ71~84)으로 판정받은 한부모를 대상으로 사례관리위원회에서 가구별 사정, 당사자의 양육 의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맞춤 솔루션을 제공한다. 시 관계자는 “자녀의 건강한 성장을 우선으로 고려해 가장 적합한 양육환경 제공에 초점을 두고 의견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례관리위원회의 의견을 바탕으로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한다. 경계선지능 한부모가 지역사회에서 직접 양육하기를 희망하는 경우 한부모가족지원센터(통합지원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일시적으로 주거와 생계를 필요로 하는 경우엔 ‘한부모가족복지시설’와 연계한다. 불가피하게 직접 양육이 곤란한 상황인 경우에는 ‘가정위탁’ 및 ‘아동복지시설’에 연계해 자녀 양육을 지원한다.
지역사회 거주 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에서 양성·운영하는 전문코디네이터가 일대일 가정방문을 통해 생활지원, 정보제공, 모니터링 역할을 수행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동만 분리되어 시설 등에 보호될 경우, 지역사회에서 보호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사회보장제도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지역자원으로 연계한다.
자녀의 성장 시기별 자극 결여 등으로 인해 발달지연이 우려되는 경우엔 서울아이발달지원센터 등 전문 기관 개입을 통해 자녀의 균형성장을 지원한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실장은 “서울시는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경계선 지능 한부모와 자녀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약자와의 동행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를 시작으로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가정 맞춤 지원과 이를 위한 법 제정, 예산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정책이 경계선 지능인 부모의 눈높이에 맞춰 들어가야 한다”며 “경계선 지능 범위를 넓게 잡고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 지원할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부모 지원 신청을 할 때, 지원 조건으로 경계선 지능 검사를 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